5월의 푸르름 사이로 누우런 보리이삭이 여무는 계절이 왔다. 보리밭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애환과 추억이 서려 있다.
70년대 이전 보릿고개란 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의미하는데 그 고통의 시기를 우리 부모님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견뎌야 했다.
가난의 상징였던 보리밭은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늦 가을에 파종한 보리는 파릇파릇한 어린 새싹으로 겨울을 난다.
추운 겨울 서릿발에 보리 뿌리가 들뜬다 하여 식구들이 모두 나와 줄을 지어 보리밭을 밟아 주기도 했다.
철 없던 어린 시절에도 한 줄기의 보리이삭도 소중함을 알았기에 보리피리도 깜북이를 뽑아 만들어 불었다.특별히 장난감이 없던 시절 보릿대를 잘라 여치집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며 놀았다.
보리바슴이 끝나고 꺼럭을 모아 불을 지피면 며칠이고 구수한 연기를 내 뿜으며 꺼지지 않고 타들어 갔다.
그 속에 묻어 두었던 감자 몇 알을 꺼내 주시던 어머니! 그 때 그 구운 감자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궁이에 보릿짚을 한아름 넣고 불을 지피면 타닥타닥 소리내며 타는 소리가 이제 생각하니 밤하늘에서 신나게 터지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흡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신세타령의 박자와도 같아 보릿짚 타는 소리가 속 시원하기도 했다고 하셨다.
눈만 뜨면 사방에 보이던 보리밭도 사라진지 오래고, 그 시절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밥이 지금은 별미로, 영양식으로 탈바꿈 되었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안면도 보리밭을 찾았다.
요즘 안면도에는 곳곳에 대단위 보리밭이 누우런 황금빛으로 변해 수확을 앞두고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튼실한 보리이삭을 보며 어렵게 보릿고개를 넘기신 부모님을 생각해 보며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