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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싫다지만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2011.06.03(금) 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푸르른 오월 산과 들은 온 통 저마다 푸른 옷을 입기에 바쁘다. 뙈기 밭에 심은 논 청 보리도 보리꺼럭을 하늘로 치켜들고 망종을 기다리며 알갱이에 살을 찌운다. 보리에게 망종은 사람 환갑이나 다름없다. 내가 어렷을적에 어른들은 보리 망종을 기다렷다. 망종이 지나면 청보리가 쭉정이로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보리가 망종 안에 다 영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망종은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하우스 안에서는 어리고 여린 못자리가 양탄자 깔아 놓은 듯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다. 어린모 길르기란 꼭 갓난아기 기르는 것과 같다. 싹이 잘 나오나 보고, 물도 마르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봐주어야 한다.

봄은 농촌사람들에게 가을 곡식들을 바라보는 황혼기 출발점이다. 논이나 밭에 무엇이든지 바둑알 채워 넣듯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야 가을이 허전하지가 않다. 봄만 되면 나는 신바람이 난다. 집근처에는 갖가지 나물이 있어서 반찬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봄에 나오는 모든 나물들은 춘곤증을 없애 주고 영양도 좋다고 한다.

잡초란 놈이 진을 치고 나를 못살게 하는 바람에 산나물과 꽃을 빈 땅이 보이기만 하면 격식 갖추지 않고 심어버렸다. 어느 때 생각하면 땅은 참 고맙기도 하다. 큰 나무에서부터 작은 씨앗까지 갈무리 해 두었다 때가되면 용케도 내보낸다. 꽃나무 사이사이에 난 잡초는 매도 끝이 없다. 잡초는 이 세상에서 없으면 좋으련만…….

겨울 문턱과 봄 문턱이 교차하는 입춘이 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나물이 있다 금전초 나물이다. 금전초를 뜯어다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삶아서 양념에 무친다. 모진 추위를 이기고 나와서 그런지 향이 너무 좋다. 금전초 베어 먹은 자리에서 새싹이 나오고 옆에서는 할미꽃이 등을 구부리고 꽃을 피워 땅만 쳐다보고 있다. 일부러 꽃대를 치켜들어 보지만 굽은 꽃은 이내 꾸부러진다. 꽃송이를 세어보니 삼십 송이는 되는 것 같다 할미꽃 가족을 분가시키고 싶은데 뿌리가 외 뿌리라서 그냥 놔둔다. 일찍부터 등이 굽은 할미꽃은 소원이라도 풀으려는 듯이 홀씨를 여기저기 날린다.

나물로 먹는 줄도 모르고 섬초롱꽃을 심었더니 뿌리가 너무 텃밭을 차지한다. 섬초롱 꽃나무가 많이 퍼져서 싫었는데 요즘은 나물로 먹으니까 더 많이 퍼지기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오면 “꽃나무가 아까워서 어떻게 먹는냐”고 한다. “베어 먹은 자리에서 움이 돋으니깨 먹고 남는 놈으로 꽃구경을 하면 되어” 한다.

칠월에 피는 비비추도 마찬가지다. 먼저 뜯어먹고 움이 나면 꽃을 본다. 농사지어서 된장.고추장 담그고 녹두묵. 동부묵. 등등 맷돌에 갈아서 손수 만들어먹는 나는 자연이 좋고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는 나보고 사먹으면 될 걸 왜 그렇게 어렵게 해먹느냐고 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가 음식을 만들면 옛날 그 맛이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사람 취향에 따라 농촌이 싫다고 하지만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남의 것 넘보지 않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자연을 벗삼아 평화롭게 살아가면 신선이요 무릉도원인 것을, 잡초를 매노라면 땅속 친구들도 자주 본다. 땅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조그만 벌레부터 혐오스런 파충류까지 친구들이 많다. 어제는 두더지 새끼 네 마리를 발견하고도 없애버릴까 하다 이놈들을 놓아주면 곡식 뿌리를 안 남길 것이 뻔한데도 놓아 주었다.

이북 놈들 땅굴 파듯 땅만 파던 놈들이라 햇빛을 보더니 사족을 못 쓴다.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안가고 찍찍 소리만 지른다. 두더지는 약간 야비한 놈이다. 어차피 땅속인데 밤에 땅을 파면 무엇이 어둡다고 아침에 해가 뜰 때면 으례히 땅을 뚫고 지나간다.

좋은 옷을 입고 일을 하면 몹시 불안 하다. 제일 편한 작업복을 입고 논이나 밭에서 일하다가 어려우면 철푸덕 앉아서 쉬기도 하고 이웃이 지나가면 붙잡아놓고 집에 먹을 것 갔다가 실컷 수다도 떨고 길거리 파티도 연다. 한 사람씩 모이다 보면 일 한 가지 는 덜 한다. 후회는 없다. 시간을 따로 내지 않고 일을 하다가 오면가면 먹을 만큼만 나물도 뜯는다. 저녁에는 취나물과 고사리 말려놓은 것으로 들깨 빻아서 깨목 된장을 끓여 상에 올려놓으니 상에서도 보글보글 끓는다. 지난 해 무가 흉년이라 알타리로 짠지를 담가더니 무짠지가 노랗게 익어서 먹음직하다. 짠지에 청양고추를 동글동글 하게 썰어서 물을 붓고 썬 고추를 띄워 상에 놓는다. 묵은 김치도 헹구어서 된장 조금 넣고 지져서 더 올려놓을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전형적인 농촌에 조촐한 밥상이다.

마음은 청춘인데 어느새 늙어 버린 부부 할 말이 없다. 그렇게도 없을까? 애매한 된장 뚝배기만 긁어댄다.바쁘니까 시장도 자주 못 간다. 바쁘다기보다는 근처에 널브러진 것이 반찬거리이어서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다. 더러는 쑥 삶은 것과 심다 남은 강낭콩과 팥을 삶아서 한데 섞어 찹쌀도 담갔다가 찜 솥에 쪄서 별미 밥도 해 먹는다. 신선아닌 신선 무릉도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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