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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10년만에 찾은 현충사엔 숙연한 봄의 향연이 "가득"

2011.04.25(월) 메아리(okab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순신이 순국한지 어언 108년이 지난 1706년 이 곳에는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사적 제155호)을 지었고, 1707년에는 "현충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 후 이 곳은 200여 년 간 추모의 행렬이 계속되었으나 일제시대에는 훼손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더욱이 당시 그의 묘소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위험에 처하자 민족지사들이 '이 충무공 유적 보존회'를 조직하였고 이순신 선양을 통해서 민족 정기를 바로 잡고자 동아일보사와 함께 주관한 국민 성금으로 사당이 중건되고 해방 후 매년 4월 28일에는 탄신제전이 올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순신장군 묘(사적 제112호)는 인근 아산군 음봉면 어라산에 있다.

비가 내린 다음날 화창한 주말의 봄날에 아산현충사를 찾았다. 현충사를 답사한지 10여 년이 지나, 다시 찾아 보았더니 많이 변한 듯 하다. 예전에는 광장을 지나 매표소가 있었는데, 이제는 광장 앞으로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매표소 입구
매표소 옆에는 아산 이충무공 유허에 관한 설명이 상세히 기록 되었으며, 매표소 주변에는 화창하게 피어난 벚꽃과 목련꽃이 우리가족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화사한 꽃망울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다른 가족들도 벚꽃과 목련꽃 앞에서 멎진 포즈를 취하며 즐거운 휴일을 만끽하고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활짝핀 벚꽃과 목련
광장이었던 곳에는 충무공 이순신전시관이 신축되어 있고, 아직은 공사 중이지만 충무공탄신일에 개관을 한다고 지금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충무문(忠武門/현충사의 정문)으로 들어서니 화사한 매화꽃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정려[旌閭] 뒤로 보이는 300여 년이 된 느티나무와 연못을 먼저 둘러 보기로 한다. 매화나무 뒤로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보인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
300여 년이 된 느티나무/경내에 있는 연못(蓮池)은 1972년 성역화 사업에 따라 인공으로 축조된 것으로 비단잉어와 돌다리 등이 경내의 조경을 돋보이게 하고 봄에는 주변의 화사한 꽃망울이 피어난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수령 300여 년이 된 느티나무
노오란 개나리와 화사하게 피어난 목련꽃과 벚꽃이 연못 주위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연못(蓮池)은 1972년 성역화 사업에 따라 인공으로 축조된 것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연못가에 피어 있는 노오란 개나리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연못가에 피어 있는 조팜나무
고택으로 가는 산책로에도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자목련이 피어있고, 예쁜 명자꽃도 봄꽃의 화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개나리와 진달래도 수줍은 인사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옛집(고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살던 집
옛집(고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살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뒤편에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어 매년 기일(매년 11월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순신이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보낸 집 앞에는 충무정(忠武井)이 있다. 충무정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들이 쓰던 우물로서 현재는 참배객의 식수로 활용되고 있다. 종가의 앞뜰에 위치한 우물 충무정(忠武井)이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충무정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들이 쓰던 우물
활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활을 쏘던 장소로 남쪽에 있는 과녁과의 거리는 145m이다. 그리고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말을 달리던 곳으로 일명 치마장이라 부르고 있다. 은행나무는 500여 년에 이르며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 되어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수령500여년이 된 은행나무
은행나무 뒤로 이충무공 후손의 묘가 보인다.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충무공의 셋째 아들인 이면 공의 묘소
활터 북면에 위치한 묘는 3대종손 이광윤, 4대종손 이홍의, 10대종손 이규남 부부의 묘가 있다. 이면 공의 묘소로 가면서 뒤돌아 본 은행나무다. 충무공의 셋째 아들인 이면 공의 묘소이다. 이면 공의 묘소에서 내려다 본 현충사 경내의 전경
  500년 된 은행나무뒤엔 이충무공의 후손이... 사진  
▲ 이면 공의 묘소에서 내려다 본 현충사 경내의 전경
현충사 홍살문은 일제시대 사당 재건 당시 정성 어린 민족의 성의를 길이 보존하고자 경내가 확장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 본전 건립 당시의 위치에 현재도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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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홍살문
충의문은 본전의 정문을 말하며 1932년 구 본전 중건 시 건립되었는데 1968년 현충사 성역화 공사로 현재와 같이 확충 개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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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충의문
1967년 4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자양문이라는 앳서를 휘호 하였으나 후에 충의문으로 바뀌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한국식 청기와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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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본전에 들어서는 순간 숙연해짐을 느꼈다. 영정 앞에서 정갈한 모습으로 묵념을 하고 샛문으로 나오니 신의대가 즐비하다. 오랜만에 아산현충사에서 이순신 영정 앞에서 참배도 하고 화창하게 피어난 봄꽃들의 향연을 즐길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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