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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 잘 지은 보람

2011.02.27(일) 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향에서 죽마고우들 모임이 있어 오전에 천안에 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례적으로 모이는데 평소처럼 고속버스를 이용했지요. 또한 으레 그러하듯 약 1시간이 소요되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여 싫어 어제 집으로 도착한 어떤 정기간행물(월간지)을 손에 쥐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 쯤 읽다 보니 ‘아시아의 별’을 건너뛰어 이제는 얼추 세계적인 스타가 된 가수 보아의 어머니 성영자 님 내용이 실렸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부유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과 가난의 쓰나미로 말미암아 보아의 부모님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보아의 어머니께선 불굴의 의지와 더불어 남다른 자녀교육법으로 두 아들을 교수 겸 피아니스트와 음악감독으로, 막내 보아는 또한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다는 것이 가히 ‘인간승리’로까지 읽혀지더군요. 이 내용을 접하면서 저는 문득 작년 이맘때의 낯꽃 피었던 졸업식의 편린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박복하여 조실(早失) 모(母)에 더하여 초등학교도 겨우 마치곤 곧바로 삭풍이 휘몰아치는 비정한 사회로 떠밀려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같이 못 배운 탓으로 말미암아 30년도 넘는 지금껏 변방의 비정규직이라는 매우 척박하고 힘겨운 삶의 험산준령을 점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난의 세월은 저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잘 가르쳐야 만 한다는 어떤 뚜렷한 반면교사의 거울로 작용했지요. 작년 2월 24일에 아들이 먼저 우수한 성적으로 충남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들은 또한 대학의 졸업 전에 이미 대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취업까지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지요.

그 덕분에 졸업식 날 아들은 많은 선배와 후배들로부터도 열렬한 박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틀 뒤인 2월 26일은 딸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습니다. 4년 연속 장학금 수령의 기록도 부족했던지 딸은 졸업식 날 별도의 학업우수상과 상패까지 받는 기염을 토했지요. 네 살 터울인 아들과 딸이 이처럼 같은 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건 아들이 군 복무와 휴학까지 한 때문입니다.

하여간 여전히 남의 셋집에서 사는 누추한 저의 형편이긴 하되 아들과 딸이 그에 굴하지 않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자라 대학까지 마치는 모습을 보자 저는 마치 천하를 다 가진 양 그렇게 얼굴에도 낯꽃이 활짝 피었던 것입니다. 천안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낙지전문점으로 가 술과 밥을 먹었습니다.

한데 술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친구들이 또 이렇게 칭찬하더군요. “따지고 보면 우리 친구들 중 네가 가장 고생이 많았는데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앞으론 네 팔자가 제일 나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돌이켜보건대 맹모삼천지교는 저리 가라 할 만치로 아들과 딸의 교육적 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지난날이었습니다.

물론 그 길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매우 험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협곡에 다름 아니었지요. 경기에 민감한 저의 생업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요즘엔 더욱이나 어렵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들어가던 교육비(비록 일부였을망정)와 서울의 딸에게 매달 송금해 주던 용돈이나마 안 나가니까 그나마 견딜만 합니다.

작년 12월에 10대 1의 경쟁을 뚫고 서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전기모집에 합격한 딸은 3월부터 석사과정을 밟습니다. 회사에서 일 잘 하기로도 소문났다는 아들은 또한 자타공인의, 효심이 장강(長江)처럼 깊기로도 소문이 짜한 우리 집안의 대들보죠. 풍랑을 탓하지 않는 어부처럼 참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일궜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는 아들과 딸이 진정 고맙고 대견합니다!

이렇게 자랑스런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떳떳한 아빠가 되고자 저는 작년 12월에 드디어 만학(晩學)의 3년 과정 사이버 대학을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이 풍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건 잘 난 자식들을 두고, 또한 보는 것이라고 믿는 터입니다. 어제는 초등학교 동창생의 딸이 결혼을 한대서 천안의 모 예식장에 갔습니다.

제 아들(29세)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시집을 가는 모습을 보자니 저도 어서 며느리를 봤음 하는 충동이 일더군요. “애인 있으면 신경 쓰여서 공부에 집중도 안 돼요!” 라던 아들의 대학생 시절이 뇌리의 중심으로 성큼 들어서네요. 그러나 이젠 ‘빵빵한 직장’도 있겠다, 용모 또한 저를 닮아(?) 탤런트 뺨치는 아들이고 보니 올해는 부디 며느릿감을 데리고 왔음 하는 바람이 굴뚝입니다.

딸은 진즉부터 애인이 있는 터인데 대학원을 마친 뒤 병원에 취업하고 나면 그 때 면사포를 씌워주고 싶고요. 작년에 아들과 딸이 받았던 졸업장과 상패는 지금도 눈에 잘 띄는 책장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자면 저는 오늘도 다시금 제 얼굴에 낯꽃(감정의 변화에 따라 얼굴에 드러나는 표시 & ‘낯꽃피다’ = 얼굴에 밝은 빛이 돌다. 얼굴에 화기(和氣)가 있다)이 봄날 진달래 꽃 만개하듯 그렇게 가득하고 만발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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