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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2010.12.20(월) 홍웅기(dmsrl65@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 조상들만 겪고 내가 사는 동안은 전쟁은 안 일어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천안함 포격과 연평도 사건을 보면서 언제나 전쟁은 불시에 일어 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나 먹고 살기도 바빠 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보면서 내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한다.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사진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사진  

여름에 태안 여행을 떠났다가 옥파 이종일 생가에 들린 적이 있다.

이종일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15세에 상경, 김윤식(金允植)·이상재(李相宰) 등으로부터 개화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98년 대한제국민력회 회장, 제국신문(帝國新聞) 사장이 되었다가, 이듬해 고종황제탄신일 기사에 '성수만를 '성수망세로 오식 불경죄로 투옥되었으나 그를 중상하는 측의 고의적인 행위로 판명되어 석방되었다.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사진  

1906년 천도교에 입교 《천도교회월보》의 월보과장(月報課長), 인쇄소인 보성사(普城社)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3·1운동 때는 자신이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이어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선국문연구회(朝鮮國文硏究會) 회장에 취임, 한글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사진  

이종일 생가에서 체험도 할 수 있는데, 독립선언문 활자판이다. 태극기를 탁본 해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불끈 불끈 살아 날 것 같은 체험이다.
태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이종일선생님,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애국선열들이 얼마나 많이 계시겠는가? 그 열사들을 생각하게 하는 생가였다.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를 가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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