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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명물 호두과자에 얽힌 추억

'무드셀라 신드롬' 단상

2009.10.16(금) 홍경석(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의 일정도 예년과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우선 아침에 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고향인 천안으로 갔다.
선친의 산소에 성묘를 마친 뒤 두정역까지 택시를 타고 나왔다.

거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도착한 전철을 타고 숙부님이 사시는 온양온천역에 하차했다.
지금이야 서울서 출발한 전철이 천안도 부족하여 아산신창 역까지 운행이 되고 있다.

그 바람에 인구가 얼추 60만 명에 육박하는 비약적인 도시 천안과 아산권역은 시나브로 수도권으로 편입이 된 셈이다.
허나 내가 어렸을 적의 내 고향 천안은 전형적인 소도시에 불과했다.

우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봉명동은 충남방적이란 큰 공장 외는 딱히 큰 건물도 없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으면 못 사는’ 달동네와 더불어 학교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들은 모두가 그렇게 논과 밭, 그리고 개발이 안 된 구릉지들뿐이었다.

버스와 택시는 시내 중심가까지 나가야 겨우 볼 수 있었으며 달구지와 리어카만이 늘 보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빈궁한 환경에서, 더구나 어머니를 너무 일찍 여의는 것도 부족하여 부친마저 깊은 병이 드셨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소년가장이 되고 말았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 무렵부터 역전으로 나와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광주리에 호두과자를 담아 팔았다.

지금도 ‘천안의 명물’로 회자되고 있는 호두과자는 아삭아삭 씹히는 호두에 더하여 달콤하고 고소한 팥 앙금 맛이 백미(白眉)다.
그렇게 열심히 팔았던 호두과자로 말미암아 우리 부자(父子)는 어쨌든 굶지 않고 살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호두과자는 어떤 생명의 은인에 다름 아니다.

숙부님 댁을 나와 딸을 천안역에서 배웅한 뒤 선물용 호두과자를 두 개 샀다.
그 걸 지인에게 드리니 아주 맛있다며 잘 드셔서 덩달아 흐뭇했다.

세월은 여류하여 그 시절 소년가장은 지천명을 넘긴 중늙은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모두 대학 졸업반이다.
지독히도 불우했던 탓에 남들처럼 많이 못 배웠고 그로 말미암아 감내해야만 했던 게 사회적 불이익과 태산과도 같은 각종의 모멸감이다.

허나 그러한 더께들은 반면교사로 작용하여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키우게 한 동인(動因)이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너무 한 탓에 호두과자는 때론 보기에도 징그러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근데 그건 바로 나도 어느새 ‘무드셀라 신드롬’에 감염된 때문이 아닐까?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쁜 기억은 지우고 의도적이나마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 노력하는 경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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