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이었을까.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순서가 다가올수록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퍼런 눈 외국인 심사위원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의 진지한 눈빛과 딸자식 또래 후배 공무원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숨 막히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 공주소방서 정만영 소방경 |
충남 공주소방서 방호예방과 방호담당 정만영(56) 소방경.
지난 26일 충남지방공무원교육원이 주최한 공무원 영어프리젠테이션 경연대회(제8회)에 대한 그의 ‘첫 경험’은 이렇듯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정 소방경이 20~30대 젊은 공무원들이 주로 나오는 영어 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그동안 공부해 온 영어 실력을 대회를 통해 검증받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 소방경이 영어책을 본격적으로 집어든 것은 2년 전으로, 세계화 시대에 외국 책을 읽고, 뉴스를 직접 듣고 싶다는 이유였다.
또 “5년 후 정년퇴임 뒤 그동안 못해본 외국여행을 나갔을 때 언어로 인한 불편을 느끼지 않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특별히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영어과를 나와 초등학교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각종 영어대회 상을 휩쓸고 있는 딸(26)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영어에 대한 관심만으로 퇴근 후 충남도에서 마련해 준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공부 했을 뿐이다.
이렇게 독학으로 일군 정 소방경의 현재 영어 실력은 ‘유학파’가 부럽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과 ‘프리토킹’을 하면 70% 이상은 알아들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데다, 이번 경연대회에서 사용한 ‘화재예방 및 대처방법(Fire Prevention Methods)’에 대한 영작도 직접 해냈기 때문이다.
정 소방경은 그러나 이번 경연대회에서 원고가 갑자기 막히는 바람에 평소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쟁쟁한 젊은 경쟁자들에 밀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 26일 충남지방공무원교육원에서 개최된 제8회 공무원 영어프리젠테이션 경연대회에서 정만영 소방경이 발표를 하고 있다. |
하지만 그는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로 하여금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많은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도전정신과 열정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 덕분에 허버트 팩(Hubert Pak) 교수로부터 공주대에서 6개월간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전을 선물 받기도 했다.
공무원교육원 관계자도 “정 소방경은 질의응답 등이 매끄럽지 못해 하위에 머물렀지만, 나이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했다”고 전했다.
정 소방경은 앞으로 “영어 실력을 더 쌓아서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한편 정 소방경을 포함 충남도 소속 공무원 17명이 참가한 이날 경연대회에는 연기군 사회복지과 지현정(24·여) 씨가 최우수상을 차지하고, 계룡시 시민봉사과 서나리(28·여) 씨와 아산시 농정과 심미홍(30·여)씨가 각각 우수상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