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면암 최익현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모덕사

주위 풍경이 더 예쁜 모덕사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 171-1

2024.06.11(화) 14:31:07 | 카바티나김 (이메일주소:onlygjr@naver.com
               	onlygjr@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

발길 따라 흘러간 곳
주위 환경이 멋진 곳 드라이브 코스로 최적인 모덕사를 찾았다. 
공주에서 청양으로 가다 보면 크나큰 표지석에 모덕사 이정표가 보인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
모덕사 입구에 있는 표지석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모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 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최익현)의 덕을 흠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모자와 덕자를 취한 것이라고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3

모덕사 앞에 있는 우목 저수지이다. 멋진 풍경이 깊은 감상에 젖어 들게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4
<모덕사 관광안내도>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5
면암 최익현 선생(1833~1906)동상

4m가 넘는 거대한 동상은 원래 칠갑산 도립공원에 건립된 상이었으나 2013년 4월 최익현 선생의 신위가 봉안되어 모덕사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안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을 때 왜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버선 속에 흙 한 줌을 넣고 물 한동이를 가지고 배에 오르시고, 구금 중에는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가 74세의 나이로 끝내 순국하셨습니다.<발췌 - 현지안내문>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6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 옆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의 환국고유제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7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8

고택은 최익현 선생이 1900년부터 6년간 거주했던 집으로 조선 후기 을사늑약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문인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사당 모덕사가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데 이어 면담 고택도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9

고택과 담을 사이로 사당 내삼문과 모덕사가 위치해 있다.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1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0
영모재(조상 신위)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진다.
사랑채인 귀동 정사는 많은 애국지사들을 모아 강의도 하고 항일지사들과 회합을 가졌던 장고하고 한다.
특히 1906년 태인 무성서원에서 74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키게 된 산실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1

이곳은 춘추관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서책과 서간문이 본관 된 곳이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2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3

2011년 청양군수 이석화님의 기념식수가 눈에 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4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5

이곳은 면암 선생의 유품과 유물을 전시한 곳인데 생전에 사용하던 피혁류, 필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실내는 관람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6

면암 최익현 선생이 생전에 기거하셨던 고택 주변으로 춘추각, 영모제, 사당이 있어서 조용히 거닐면서 독립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7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8
성충대의의사비(포로팔도 사민 1905년 음력 11월 21일)

성충대의의사비(포로팔도 사민 1905년 음력 11월 21일)
내용 : 팔도의 동포 사민들에게 고함.
아! 슬프다. 오늘의 국사를 차마 어찌 말하랴, 옛날 망국에는 종사만이 무너지더니, 오늘의 망국에는 인종마저 함께 무너지는구나. 우리 삼천만 인민이 모두 노예가 되니 남의 노예가 되어 살기란 곧 죽음만 같지 못하다.
하물며 당당한 이 대한 자주 지민이 구차하게 고개 숙여 저 원수 밑에서 하루의 삶을 구한다면 어찌 죽음보다 나으랴. 우리나라의 토지도 인민도 정치도 모두 우리의 자립이요, 자주였다.<발췌 - 현지안내문>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19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0

면암 최익현 선생은 경기도 포천에서 탄생하여 6세 때 글을 익히고 14세 때 한말 성리학의 대가인 화서 이항노 선생 문하에서 사사하였다고 한다. 23세 되던 해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숭앙을 받았다. 외세에 개항을 반대하는 위정척사론을 펼쳤으며 1900년 청양으로 이주하여 6년간 거주하였다고 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1

사당 내삼문이 잠겨 있어서 모덕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담 너머로 조용히 선생의 깊은 정신과 절개와 애국정신을 기려 본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2

홍살문은 궁전, 관아, 능, 묘, 원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색을 칭한 나무 문이다. '붉은 화살 문'이라는 뜻으로 홍 전 무, 홍문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나무 건축물로 출입문의 역할을 했지만, 출입의 기능보다 상징성이 더 중요시되었던 문이다.
모덕사 입구 반대편에 서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3

충남 청양군에서 관리하고 있는 모덕사 옆 우목 저수지이다.
우목 저수지 주위로 산책을 하며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피크닉이 가능하고 현재 잔디공원 조성 중인데 조성 후에는 보다 많은 사람이 소중한 쉼터로 활용되고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4

모덕사 안에 있는 연못에서는 낚시 금지이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5

수심이 깊어 절대 수영금지이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6

우암저수지 한편에는 낚시터가 조성되어 있기는 한데 모덕사 쪽의 경고문에는 낚시 및 수영을 금지하는 경고판이 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7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8

저수지를 끼고 정말 걷기 좋은 산책로가 구성되어 있다.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29

면암최익현선생의위패와영정을모신모덕사 30

선비충의 문화관 조성 사업이 있는지 모르고 방문하게 되었다.
청양군에서는 지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모덕사 주변에 "선비 충의"라는 이름으로 숙박 체험시설 및 서화 숲 정원, 면암길 조성, 조경 식재 및 각종 기반 시설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총 사업비 114억 원으로 조경 비만 12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모덕사
충남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모덕사
 - 입장료, 주차료 무료

 

카바티나김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카바티나김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