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다녀간 완연한 겨울, 당진 합덕에 위치한 신리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기온이 조금 누그러진 날 방문했지만 도로변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어 겨울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입구가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 갑니다. 조선의 카타콤바 (로마의 비밀 교회)라 불리는 합덕의 신리에는 마을 주민 400여명이 밀양손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곳에 천주교가 전해지자 모두가 신자로 교우촌이 형성되었습 니다. 하지만,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자 모두 타 지역으로 피신을 가 이곳에는 한 명도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에 해마다 전국에서 관광 차를 타고 순례를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방이 통창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순례객들이 단체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입니다.
작은 집처럼 생긴 경당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신 성인들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경당 안에서 순교자를 마주하며 두 손 모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다섯 개의 경당에는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하신 황석두 루카, 오메트르 신부, 성 손자선 토마스, 성 위생 신부, 성 다뷜뤼 주교가 모셔져 있습니다.
하얗게 뽀족 솟은 건물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순교 미술관입니다.
2017년 3.25일 개관한 순교 미술관은 이종상 화백이 기부하신 13점의 순교자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3년 동안 공들여 완성하신 작품에는 순교자들이 모진 압박과 역경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가는 역사적 사실이 그림과 해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쪽에는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을 위해 다뷜뤼 주교님이 집필한 여러 권의 천주교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의 창고형 커피숍 치타누오바에 들러 차를 마셨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새로운 도시" 라는 뜻의 차타누오바는 예전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였는데 개조하여 커피숍으로 변모했습니다.
순교 미술관이 보이는 뷰 좋은 곳에 앉아 창밖으로 신리의 평야를 바라보니 가슴이 확 트이고 시원해 집니다.
여기 초가는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며 성 다뷜뤼 주교가 은둔하며 천주교 서적들을 집필했던 곳입니다. 다뷜뤼 주교는 프랑스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입국하신 5대 조선 교구장이십니다.
생가의 기둥이나 뼈대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상태입니다. 1927년 신리의 신자들이 이곳을 매입 공소로 사용합니다.
종교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신리 성지. 고요한 성지를 천천히 걷다 보면 멈춰 서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며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장소도 많은 곳입니다. 아름답고 조용한 겨울의 신리 성지는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