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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인당(忍堂)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모닝스타 학부 때 전주에서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다~

2023.12.22(금) 20:54:50 | 모닝스타 (이메일주소:gkgk2023@naver.com
               	gkgk20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박동진 명창 생전에 가까이서 뵈었던 기억이 있다.
공주에 전수관이 있어서 찾게 되었다.
전수관에 와 보고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

1998년 (84세) 살아 계실 때 후진을 양성하실 목적으로 판소리 전수관을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으로 고향인 무릉동에 개관하게 되었다. 
박동진 명창이 타계한 후에는 수제자 김양숙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도 판소리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전수관은 앞으로도 박동진 명창의 업적을 기리는 한편, 판소리의 활발한 전승과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

갑작스런 추위 덕에 주차장은 한산했고 간간이 판소리 문하생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3

이리 오너라~~~
명창의 소리가 들리는듯~
여기에서도 2~3년 기거를 하셨다고 한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4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5

추위가 궁금증을 돋우었다.
얼른 따뜻한 곳이 그리운 날씨다.
전수관 안으로 쏘옥 빨려 들어가듯 들어섰다.
무료 체험학습이 있는데 노래는 잼뱅이라 판소리도 잘 안될 듯하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6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7

방명록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선생님은 이름을 남기셨습니다!>
사람이 이 생에 태어나 이름을 남기고 살기가 60년을 살아보니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나마, 아는 지인들에게라도 좋은 사람으로, 그리운 사람으로 남겨보려는 노력을 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잘 살아보자가 목표입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8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9

1916년 7월 12일 충남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 365번지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최고의 소리꾼이자 판소리 완창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사설로만 전해오던 판소리 일곱마당을 소리로 복원한 분이다.

198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81년에 미국 일주 공연에 참가하였으며, 1982년에는 미국에서 《성서 판소리》를 발표하였다. 
1985년 국립국악원 판소리 원로사범에 임명되었고, 1987년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후진 양성에 힘쓰기 위해 고향 공주로 내려와 전수관을 개관하는 한편, 
여전히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쳤고,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완창과 장시간 연창을 감행하는 등 정렬적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7월 8일 공주 전수관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87세 생일이 겨우 4일 앞이었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공주시에서는 매년 그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를 열고 있다.<출처=나무위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0

훈장, 상장들이 즐비하다.
모닝스타는 노력의 댓가로 자격증이 즐비하다.
60에는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60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잘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1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2

인당 박동진 명창의 일상

소리로 시작하여 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매일 새벽에 일어나 3~4시간 씩 소리를 연습하며 자신을 다스렸다.
새벽부터 소리를 공부하던 습관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기력이 쇠해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데도 어김없이 일어나 연습을 했다.

"소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축복이여!
평생을 해온 것인데 하루라도 소리 연습을 안하고 밥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어~"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3

명창에게 판소리는 그의 삶 자체였고, 전부였다.
판소리를 어떻게 이루었는지 생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성공하려면 전부가 되어야 겨우 이룰 수 있구나~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4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5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6

개인적으로 성경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닝스타는 인당의 신앙과 판소리의 이야기를 읽고,
"판소리는 생활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안되는 것이 없구나" 생각했다.
인당은 또 욕을 잘하기로 유명하시다. 대통령님께도 욕을 하신분~~

걸쭉한 입담 구수한 익살
오장이 후련하던 통쾌한 풍자 한판
찌든 가슴 웃기더니 고된 세파 달래더니
바람가듯 기어이 꽃잎 지듯 허망히 산돌아 떠나가신 한 시대 예인이여~~  <작시:한명희>

인당을 잘 표현한 시 같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7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8

인당의 판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 가족 세 명이 갔는데 
우리 모두 약속이라도 했듯 심청가를 선택해서 들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19

인당은 소리꾼이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서 많은 스승으로부터 소리를 배우다 스물다섯 살 때 목소리가 제 기능을 상실하여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자살하려고 독약을 마신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어가 독공을 했다.
그러다 목에 탈이 나면 똥물을 마시면서 목을 치유했고, 치열하고 혹독하게 독공에 정진하여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0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1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2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3

모닝스타가 박 명창의 들었던 판소리가 기억이 난다.

우리 민족의 특성 <빨리, 빨리>를 풍자한 소리 한번 들어 보소~아랫 마을 최부자 집 이야기올시다.
귀하디 귀한 '셋째 딸 시집보내기'를 판소리로 들려주었는데,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 가겄다.
최부자 영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었겄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총각한테 시집보내려고 찾던 중에, 식전 댓바람에,마을 어귀 찌그러진 똥숫간에서 일보던 놈이 허리 끈을 자르고 볼일을 보았겄다.이 정도면 됐다!  내 사윗감이다! 냅다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첫 날 밤을 보내고~~~ 중략   그다음은 다음에요~~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4

직원의 안내로 내부에 들어가서 방안을 볼 수 있었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5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6

문하생들의 불타는 연습 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인당박동진판소리전수관 27

평소에 늘 자신은 광대라며, 광대로서 죽기를 바라던 명창 박동진 선생이, 오늘 아침 한시도 놓지 못하던 부채를 갑자기 놓아 버렸다. 1916년 생이시니 올해 여든 일곱, 천수를 다했지만,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선생이 떠난 자리를 누가 있어 메운단 말인가.이제 박동진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공주시 무릉동 판소리 전수관도 한 동안 적막하겠다. 갑자기 놓아버린 그의 부채를 누가 다시 들어 펼칠 것인가.영원한 광대였기에 위대했던 예인이여, 편히 잠드소서.
<출처=최동현(군산대 교수, 판소리 해설가>

오늘은 전수관에서 다시 그를 보게 되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박동진 판소리 전시관
충남 공주시 무릉증말길 22-14
이용시간 : 09:00~18:00 (동절기 12월, 1월, 2월은 09:00~17:00)휴관일 ; 매주 월요일, 설 및 추석 명절 당일 
관람요금 : 무료
상담 및 문의 전화: 041)856-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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