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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돈암서원에 갔다 가 코스모스도 보았다!

코스모스 보러 갔다 가 돈암서원도 보았다!

2023.10.24(화) 19:31:01 | 모닝스타 (이메일주소:gkgk2023@naver.com
               	gkgk20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코스모스 먼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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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의 끝자락이라도 보려는 마음이었다.
코스모스는 바람과 함께여야 예쁜데 바람이 휘~불면 코스모스가 춤추기 시작한다.
코스모스 한들 한들 피어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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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이정표를 보면서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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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한옥마을 스테이를 둘러보았다. 
가격이 저렴하여 이용하기에 좋을 듯하였다.
논산 시민 50% 할인, 이웃 시민 30% 할인이 있었다
6인 실이 가장 큰데 5~7만 원 선에서 1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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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6인실
▲ 가장 큰 6인실

너무 예뻐서 올라가 보았다. 
한옥의 멋이다.
뒤뜰이 정말 예쁘다. 사랑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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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학을 실천한 서원 <돈암서원>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 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 사립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670여 개 서원 가운데 대표적인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연속유산으로 구성된 9개 서원은 한국의 서원이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물론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 특색을 가진 사례로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한국의 서원에는 돈암서원을 비롯해 전북 정읍 무성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경북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등이 포함됐다. 서원은 명현(名賢·이름난 어진 사람)을 기리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설치한 사설 기관으로 조선 시대 사림의 주요 활동 기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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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 동문들이 버스 2대로 관광 중이었다.
동의를 얻고 사진에 담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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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
世界遺産(UNESCO World Heritage)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을 말한다.

먼저 누각이 보인다.
유생들 휴식을 위한 교류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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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덕문

산앙루
▲ 산앙루

입덕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래 응도당이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왼쪽에 응도당이 위치한 사연이 있었다.

1854년과 1874년에 논산지역에는 큰비가 왔고 정부에서는 홍수를 선포했다. 
지금도 재난구역을 선포하면 세금감면 등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당시에도 홍수를 인정해주면 세금을 거둘 수 없기에 홍수를 선포하자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런데도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관에서는 홍수를 선포했고, 서원의 장의들은 서원 주변에 방천 사업 등으로 서원을 보호하며 한편으로 서원을 물이 차지 않을 만한 지역으로 옮길 결정을 하게 된다.

그 시대는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47개 서원만이 살아남은 때라 관에 지원 요청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전답을 팔아 우선 사당과 강당 전사청 등 서원의 필수 건축물만 옮기고 사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응도당(1634)과 돈암서원의 건축 과정을 기록한 돈암서원원정비(1669년)는 그 자리에 두고 떠났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하임리 숲말 산기슭으로 현재 서원 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km 떨어진 곳에 있다. 

응도당
▲ 응도당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1880년(고종 17년)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서 지었다.

서원이나 향교에서 강학 공간으로 사용하는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드문 편인데,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 전면에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김장생이 강경 죽림서원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장수강학의 성격을 가진 강당으로, 원래의 건물은 드물게 큰 규모와 옛 규제를 충실히 따랐다 한다.

응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누 마루식 건물로 겹치마에 맞배지붕의 주심포 계통의 건물이며, 박공널 밑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을 설치하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퇴칸처럼 달았다. 응도당은 기와에 씌여 있는 명문으로 보아 1633년(인조 11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출처=위키백과>

돈암서원 원정비
▲ 돈암서원 원정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의 역사를 기록한 비식이다.

조선시대 중기 문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하생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사계와 그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 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비이다.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방형의 비 받침대에 대리석 비석과 비 머리가 서 있다. 이들은 예학과 성리학의 대가로 고향에 돌아와 주자학을 연구하였는데, 비문에는 장중하고 온화한 사계와 치밀한 신독재의 성품을 기리고, 그들의 높은 학문을 적고 있다.

현종 10년(1669년)에 세웠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적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 새겨져 있는 전서체 제목은 김만기가 썼다. 이 서원은 숲 말에 있던 것을 홍수 때 물이 차므로 고종 17년(1880년)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는데, 그때 비석도 옮겨왔다.

현재의 건물들은 비문에 적혀 있는 건물 배치와 다르다.<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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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내부는 제향을 올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위치한 제향 영역이 있다.
숭례사는 문이 닫혀 있어 문틈으로 구경하였다.
대신 꽃담을 자세히 보았다.
꽃담장은 본래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된 독특한 전통담장이다. 
숭례사를 둘러싼 꽃담장은 이곳이 특별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지부해함, 박문약례, 서일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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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한 교육기관이자 무형적, 역사적 독특성의 탁월한 증거다. 
성리학자들은 교육에 필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과 물리적 시설을 완성하였다.
자신이 존경하는 지역의 인물을 제향함으로써 후세대에 본보기를 제시하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계승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하였다. 또한 한국의 서원을 사회 교화와 정치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성리학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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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 배롱나무

한국의 서원은 제향과 강학, 교류와 유식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각각 사우, 강당, 누마루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서원에는 꼭 배롱나무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만발한 배롱나무 꽃이 눈에 선하다.

주요 문화재
논산 돈암서원(사적 제383호)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보물 제1569호)
돈암서원 유경사(숭례사)(충남 유형문화재 제155호)
돈암서원 원정비(충남 문화재자료 제3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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