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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여 금동대항로는 갱긋찮게 생겼다더라.

2023.10.19(목) 01:06:34 | 정림의환경이야기 (이메일주소:sjl8544@naver.com
               	sjl854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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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 국가를 세운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나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위대한’ #고구려, 삼국을 통일하여 ‘민족문화’의 토대를 닦은 #신라와 비교할 때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인다. 언론이 열광하는 최고, 최초, 최대라는 소위 ‘3 최’를 백제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도 어른들은 기껏해야 ‘#꿈꾸는 백마강’이라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사실인 양 떠들어대고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백제는 힘이 없어 몰락한 #고대국가로 여겨 관심이 없었다.
#한국사자격증을 취득하려 인터넷강의를 열심히 듣던 때였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타강사 최**가 진행하는 백제의 문화를 듣고 있었다.
설명을 너무나 잘해서일까? 백제의 모습들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호남평야의 곡창지대에서 #노동요를 부르며 이웃들과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김홍도의 #풍속도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듯하다.
강사는 서민들의 생활을 지나 귀족들의 사치스런 생활용품 중 #금동대항로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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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자료로 보여준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눈이 커졌다. 너무 황홀하다.
문화재 감상에 아무런 식견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빼어난 자태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습이다. 미인이 널린 연예계에서도 단아하고 고귀하게 품위 있는 자태가 출중하여 수년 동안 앙케이트 조사에서 항상 1위인 당대 최고 여자배우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실물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검색해보니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 모조품이 있고 진품을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당장 #부여로 달려가고 싶지만 가까운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부터 가보기로 한다.
그날은 유난히도 더운 7월 여름날로 방학이라서인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와 함께 박물관에 자주 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는 지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신라 #경천사10층석탑 진품이 4층 건물 천정을 뚫어 버릴 듯 웅장하게 서 있다. 기세에 놀라며 2층 백제실로 들어선다.
유리벽 속 대항로는 요염하게 눈웃음을 흘리면서 12개 구멍에서 꽃향기를 품어내는 듯 하다.
나는 홀리는 듯 쳐다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조품이 이 정도라면 진품은 어떨까? 감상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러나 생활에 바빠  마음속에 담아둔 채 2개월여를 그냥 그렇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여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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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모처럼 백제문화 나들이 시간을 만든 것이다.
딸아이는 국문학도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우리역사에 대하여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하며 유적지와 작가 #신동엽생가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방문지를 의논한다.
나는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낙화암을 감상하고 백마강의 황포 돛배를 탄 후 시간을 충분히 배정해서 박물관과 신동엽 생가를 방문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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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대항로 진품을 볼 기대에 부풀어서 우리는 신나서 여행을 준비한다.
 평일이어선지 여행객이 많지 않은 부여는 문화적 향기를 고즈넉하게 뿜어낸다.
늦여름의 쬐약볕이 한창인 점심 식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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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관광명소인 #구드래조각공원을 지난다.
군데 군데 설치된 조각들이 대도시의 공원들과 다르게 자유롭고 무심한 듯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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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니 이곳은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고 1996년~1997년에 조각예술품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굿뜨래음식특화거리가 인접하여 맛있는 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다소 늦은 식사로 배를 채운 우리는 인근에 있는 #부소산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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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의 #낙화암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굴리며 놀다가 우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 모습에 우리도 놀라서 얼음땡이 된다.
정신을 차려 핸드폰에 담으려 하니 이미 다람쥐는 저만치 사라졌다.
아쉬어하며 한참을 올라선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 만큼 힘들다.
커다란 바위 위에 정자가 보인다. #백화정(百花亭)이라는 표지판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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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정자에 들어선다. 정자 아래 탁 트인 #백마강 줄기가 백제의 품격을 망설임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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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고 붓으로 마음을 그리며 풍류 예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풍취의 자신감이다.
비교를 불허하는 듯한 자랑질이 기함괴석에서, 기묘하게 몸을 비틀며 서 있는 소나무에서,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을 쉬폰 스카프 삼아 호기있게 서 있는 정자의 처마에서도 마구 풍긴다.
그저 감탄만 할 뿐 정자에 앉아 백마강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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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당시 백제의 상황이 상상되기 시작한다
#백제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잠시 의자왕놀이에 빠져있던 나는 딸아이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정자를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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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을 보려고 하였으나 정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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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둘러 황포 돗배를 타려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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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다 보는 백마강은 결 고운 은빛 지느러미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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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돛배는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넓은 품새가 어머니의 굵은 팔목 같다.
두 팔로 휘저어 물놀이를 시켜 주는 어머니의 입김이 따뜻하다.
황포 돛배는 미끄러져 나간다.
늦은 오후의 뙤약볕이 눈이 부셔 실눈을 뜬 채 물끄러미 앉아 있던 나에게 #백마강은 말을 걸기 시작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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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츠케 온 거여?” 얼굴이 반쪽일세. 요새 솔찬히 개갈 안 난겨?
어쯔까나. 인제  승내지 말고 구경 잘하고 가라구.
오디께로 가능겨?“

시골 어머니의 그윽한 눈길로 안부를 물어보는 듯하다.
딸과 나는 배 뒷켠에 서서 부여의 초가을을 맨 몸으로 느낀다.
배가 한 바퀴 돌아 정자 근처에 오자 낙화암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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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래쪽에 적혀있어 역사의 비현실성에 웃는 소리가 백마강에 추억으로 뿌려진다.

백마강의 낭만을 흠뻑 즐긴 우리는 걸음을 옮겨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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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박물관에서는 금동 대항로를 주제로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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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감 시간인 6시가 많이 남지 않아서 서둘러 안으로 둘어간다
 
금동대항로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엄청난 우연 때문에 발굴된 물건이라 그렇다.
1993년 12월 12일, #능산리고분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 공사를 하기 위해 본래 있던 논을 갈아엎은 뒤, 터를 파던 도중 물이 고인 진흙 웅덩이 속에서 금동으로 된 향로가 발견되었다. 무려 천 년을 넘는 세월 동안 땅 속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진흙에 잠겨 산소가 차단된 덕에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였다. 이와 더불어 바닥에서는 기와와 토기 조각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도 발굴되었는데, 대향로를 감싼 천이 세월이 지나 삭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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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발굴작업이 순조롭게 되지 않았던 당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유물 발굴을 하자고 주장하시던 학자에 의하여 무엇인가가 눈에 보였다고 한다. 발굴자는 혹시 유물이 상할까? 염려되어 얼은 땅을 두 손으로 파내려 가서 대항로를 꺼냈다고 하는 것이다. 발굴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자 발굴자의 개인 경비로 충당하면서 발굴하였다는 강사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대항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임을 모르는 게 사실이었다고 하니 정말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처음 발견되고 11일이 지난 1993년 12월 23일, 여러 주요 일간지에서 일제히 국보급 백제 유물이 발견되었음을 대서특필하였다.
이후 발굴 결과 대향로가 발굴된 곳이 원래는 사찰 내에 부속된 대장간 자리였다. #국보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扶餘陵山里寺址石造舍利龕)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해당 사찰은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고자 왕실 차원에서 세운 원찰인 듯하다.[3]
발굴 당시에만 해도 신라라고 하면 떠오르는 #금관처럼 일반 대중들이 백제라고 하면 딱 떠올리는 멋진 상징적 유물이 없던 차에 발견된 대항로는 능히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로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그 조형 솜씨가 워낙 훌륭하고 뛰어난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손꼽을 수 있는, 능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조상들의 걸작품이다.
대향로를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 말-7세기 초라고 추정한다.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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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1.8 cm이고 크게 4개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용 모양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진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오른 향로 뚜껑, 뚜껑 위 봉황 장식이다.
 
향로에 뚫린 구멍들은 직경 0.6 cm 정도지만, 개중 몇 개는 1 cm 정도로 조금 더 넓게 확장되어 뚫렸다. 처음 제작할 때 생각보다 향이 잘 타지 않아서 구멍 몇 개를 더 크게 만든 듯하다. 구멍은 향로 꼭대기 봉황의 가슴에 2개, 향로 뚜껑 상부에 5개, 그리고 중부에는 5개로 총 12개가 있다. 이중 중부에 있는 구멍은 향의 연기를 배출하는 용도가 아니라 바깥에서 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는 용도이다. 이렇게 바깥 공기가 들어옴으로써 향로 안에서 대류가 일어나 향의 연소시간이 길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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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의 맨 아래에는 용이 발톱으로 땅을 디디고 입으로는 향로의 본체를 문 형상으로 향로를 떠받친다. 용의 발톱은 5개인데, 다리 3개는 땅을 디디고 한 개는 하늘로 치켜올려들어 매우 역동적이다. 본체의 아랫부분에는 연꽃잎을 8개씩 3층으로 배열하여 연꽃잎과 남은 공간에 동물 25마리에 인물 2명을 섬세하게 부조했다. 본체의 아랫부분과 윗부분(뚜껑)이 서로 맞닿는 부분에는 구름 문양으로 띄를 두 겹으로 둘렀다. 본체의 윗부분(뚜껑)에는 산 봉우리들이 여러개 있다. 산과 계곡에는 동물이 42마리, 인물 17명이 부조되었는데, 묘사된 동물들 중에는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 코끼리, 원숭이, 악어도 있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상상의 동물들도 있다. 향로의 정상 바로 아래쪽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다섯 사람이 완함, 북, 거문고, 배소, 종적 등 악기를 연주하며 앉아 있다.
 
산 꼭대기에 해당하는 정상에는 어떤 새가 날개를 편 채로 있다. 보통 이 새를 봉황이라고 말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학문적 소견도 있다. 백제 왕실을 상징하는 천계(天鷄)라는 것이다.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다수 받은 것이 백제 후기 유물들인데  신수와 영물에 비해 이러한 조류 조각이 많다는 점과 더불어 그중 다수의 조류 조각에서 며느리 발톱으로 추정되는 묘사가 보인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다.
 
연꽃은 물론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가 모두 있다. (다만 도불습합적 유물이라는 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불교적 도상만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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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는 대항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자료가 벽면을 모두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홀리듯 설명글귀를 읽다가 대항로 살펴보기를 반복한다.
금빛 자태를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뽐내는 대항로는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내가 원채 슴것슴것허다가 막상 보니께 아주 갱긋찮게 생겼지?
서울에 있는 내 친구는 오디께 있어? 거기는 원채 탑시기가 많다는데 가심이 개갈 안나게 했간?
솔찬히 나랑 거지반 똑 같이 생겼을 겨.
인제 네가 나랑 만났으니 노상 깜뭇하지 말고 댕겨서 내 얘기를 해 줘야 할 끼여.
인제 가능겨? 거지반 냉거지 시간이 다 된기여.
베룸빡 시계가 6시여. 난중에 다시 올 거여? 반굉일에 또 와서 더 많이 친해지자구.
조심해서 댕겨.“
박물관을 제일 나중에 나오는 나에게 친구가 속삭이는 듯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부여박물관 계단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계단 양 끝의 진분홍 꽃들이 향기롭다.
대항로의 향기가 온통 부여를 부여잡고 있는 듯하다.
부여는 그 자체가 옛 성인의 정취이다. 아마도 나는 몇 번은 이 곳을 더 올 것이다.
대항로와의 대화를 잊지 않고 서울 이촌동 친구에게도 안부를 전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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