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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시대의 마음, 문화재에 새겨지다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

2023.08.20(일) 22:53:42 | 나드리 (이메일주소:ouujuu@naver.com
               	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화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석

▲ 백화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석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한민국 문화는 유행을 선도하고, 한국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K-POP, K-FOOD, K-MOVIE는 이미 세계인들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의 개념이 오래된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지에서 일상생활의 놀이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문화’를 검색하다 보면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마애삼존불상 안내문

▲ 마애삼존불상 안내문

 
문화를 간단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국가의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표현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관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음악이나 영화를 시청하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작가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시간 속으로 다가가 역사적인 배경과 소통이 가능합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마애삼존불상의 정면 모습

▲ 마애삼존불상의 정면 모습


마애삼존불상의 후면 모습

▲ 마애삼존불상의 후면 모습

 
1,5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미소를 볼 수 있는 국보 제307호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은 충남 태안군의 주산인 백화산(白華山:284m) 정상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을 보면 1,500년 전 백제 석공의 불심(佛心)과 선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높이가 394cm, 폭이 545cm의 거대한 화강암을 다듬어서 마애삼존불입상(磨崖三尊佛立像)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삼존불의 미소에는 서민적인 평온함과 자애로움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마애삼존불상에 남아 있는 희미한 미소가 더 아름답다

▲ 마애삼존불상에 남아 있는 희미한 미소가 더 아름답다

 
삼존불의 일반적인 배치는 중앙에 본존불(本尊佛)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배치하는데요. 이곳은 가운데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좌우는 여래입상(如來立像)을 배치한 것이 특이합니다. 불상이 취한 자세나 대략적인 표정, 지니고 있는 장신구가 뚜렷하여 더 가치가 있습니다. 돌 속에서 부처가 발현하여 세상으로 나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장인의 예술적 경지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태을암 뒷편에서 바라 본 풍경

▲ 태을암 뒷편에서 바라 본 풍경

 
태안 마애삼존불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를 나눴을 때, 좌측의 여래입상의 크기는 2.5m, 가운데 보살은 1.8m, 우측 여래입상은 2.4m의 정도입니다. 불상들의 얼굴이나 상반신이나 모두 세월의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 의해서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물론 풍화작용 같은 자연적인 침식으로 손상된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500년 동안 선비들이 감모대에서 술을 마시면서 돌을 던져서 생긴 상처로 많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감모대 모습

▲ 감모대 모습
 

문화유적지에서 마주하는 작품들을 보면 그 시대의 생각을 알 수 있지요. 서산시 용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 국보 84호입니다. 이곳 마애여래삼존상은 풍요롭고 품위가 있는 미소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형태가 잘 표현된 이유도 있겠지요.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조각한 예술인은 부처가 이 세상을 풍요롭고 평안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대웅전에서 바라 본 태을암 경내

▲ 대웅전에서 바라 본 태을암 경내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총 968곳의 사찰(寺刹·절)이 있다고 합니다. 국보·보물·사적 등 국가 지정·등록 불교 문화재가 총 1567개라고 하니 우리 민족은 불교문화에 익숙해져 있지요. 삼국시대 때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불교는 현재 800만 명에 이르는 불교인들을 형성하게 되었답니다. 백화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1962년 10월 1일에 전통사찰 제40호로 등록된 ‘태을암’이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바라 본 마애삼존불 쪽 방향

▲ 대웅전에서 바라 본 마애삼존불 누각과 산신각


태을암의 역사는 태안군지 제8장_자연환경과 민속에 기재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태을암의 예전 이름은 ‘태일전’이었다고 합니다. 태일전은 천지의 시조를 모셔 놓은 각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현(義城縣)의 고적조(古跡條)에는 “태일전은 빙혈 옆에 있다. 매년 상원에 임금께서 향을 내리시어 제사를 지낸다. 성화14년 무술에 충청도 태안군으로 옮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신각 외부 모습

▲ 산신각 외부 모습


산신각 내부 단군영정

▲ 산신각 내부 단군영정

 
태안군 사묘조(祠廟條)에는 “태일전은 백화산 고성 안에 있다. 성종 10년 기해에 경상도 의성현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 안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1478년(성종 9년)에 경상도 의성현에 있던 태일전을 1479년(성종 10)에 태안의 백화산으로 옮겼다는 이야기지요. 마애삼존불의 제작 시기는 6세기경이니 마애삼존불상이 생기고 난 후 800년 후에 태을암이 터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누각에서 바라 본 태을암

▲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누각에서 바라 본 태을암 
 

산신각 아래 약수터

▲ 산신각 아래 약수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속담이 있는데 감모대와 망양대가 그 꼴입니다. 마애삼존불상 정면 10여 미터 앞에는 잘 다듬어진 돌에 ‘감모대’라고 적힌 탁자 모형의 대리석이 있습니다. 이 감모대에서 조선시대 권력층이나 유생들이 풍류를 즐기다가 마애삼존불입상에 돌을 던지면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유교를 공부한다는 유생(儒生)들이 800년 전 선조의 유물에 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모진 풍파와 어리석은 유생들의 돌팔매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지켜낸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함을 느낌니다.

감모대와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누각 모습

▲ 감모대와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누각 모습

 
마애삼존불이 있는 보호누각 정면에는 감모대와 태을동천(太乙洞天) 그리고 일소계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태을동천의 글귀 옆에는 작은 글씨로 ‘가락기원일천팔백십삼년갑자(駕洛紀元一千八百十三年甲子)’와 ‘김해김씨장보암(金海金氏藏譜巖’),‘ 계해맹추해초김규항제(癸亥孟秋海超金圭恒題)’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1923년 여름에 김해김씨 김규황이 자신의 족보와 글을 적었다고 쓴 것입니다. 일소계(一笑溪)는 김규황의 아들 김윤석이 썼다고 합니다.

태을동천이 적힌 절벽 모습

▲ 태을동천이 적힌 절벽 모습


태을동천 앞 일소계

▲ 태을동천 앞 일소계와 감모대

 
태을동천이 새겨진 절벽 위에는 망양대가 있습니다. 1920년대 돌에 바둑판을 그리고 김해김씨 일가와 유생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합니다. 마애삼존불을 내려다보며 바둑을 두니 세상을 발아래 두고 권세를 누리는 기분이었겠지요. 조선시대 유교는 고려시대 불교보다 못한 사상들을 갖고 권위주의에 빠져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망양대 모습

▲ 망양대 모습


망양대 바둑판과 마애삼존불상 누각 모습

▲ 망양대 바둑판과 마애삼존불상 누각 모습

 
이곳이 다른 곳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의 마애삼존불,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산다는 태을동천, 유가(儒家)의 감모대와 일소계가 백화산 정상을 중심으로 태을암을 감싸는 형국이지요. 3개의 종교가 화합하여 고단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아닐까요. 지역주의, 정당주의, 이기주의를 타파하려면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져야 합니다.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는 도교와 유교를 보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 본 태안시내

▲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 본 태안시내



백화산 태안마애삼존불
충남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78-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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