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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제왕국의 빛을 되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국보급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곳

2023.04.15(토) 06:50:47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올 때마다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공주로 수학여행 왔을 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1980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른인 나도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본다는 자체가 으스스하기도 하고 신기한 체험이었는데,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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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의 하나로 선정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가 64년간 도읍지로 삼았던 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해발고도 130m의 송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주 송산리 고분군'으로 불렸으나, 2021년 9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유적지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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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무료로 개방이 되었는데 2023년 4월 1일부터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어른 기준 3,000원이며 청소년과 군인은 2,000원, 초등학생은 1,000원을 받는다. 공주시민과 부여군민, 65세 이상 경로우대자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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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국내 고고학계를 뒤흔든 대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내 10대 뉴스에도 선정된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 그것이다. 문화유적 발굴이 그토록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백제왕릉들은 대부분 도굴되거나 무분별하게 발굴되어 유물들이 거의 사라져버렸고 누구의 무덤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무령왕릉은 발굴 직후 한동안 폐쇄됐다가 유물을 모두 수습한 뒤 빈 고분은 송산리 고분군 5, 6호와 함께 일반 관광객에게 1976년 2월부터 공개되었다. 당시 무덤 입구를 거쳐 무덤방까지 관람객들이 들어가서 무덤방 입구에 설치된 유리창 너머로 안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에는 왕릉이 기울고 물이 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어 2012년에도 무덤방 벽면과 그 앞에 관람객 차단 유리 벽에 물기가 맺히고 곰팡이가 피는 현상이 관찰됐다.
 
결국, 발굴 26년째인 1997년 7월 15일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 고분군 5, 6호분의 석실들은 관람목적의 개방이 전면 금지되었다. 그 대신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을 2003년 만들어 관광객들이 대신 내부 구조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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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굴 복원된 고분은 모두 7구로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 동쪽에는 1~4호분이 있으며 맨 아래 남쪽에 새롭게 발굴한 29호분이 있다. 이외에도 일대에는 수십 개의 고분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고분군 모형전시관에는 5호분과 6호분, 무령왕릉의 모습을 실제의 크기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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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분은 대부분의 백제 무덤형식인 굴식 돌방무덤이다. 굴식 돌방무덤은 사람이 사는 집처럼 방과 문이 있는 무덤으로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널을 보관하는 방, 무덤 입구에서부터 널방까지 이어지는 널길,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 등이 갖추어져 있다.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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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분은 무령왕릉과 더불어 벽돌식 무덤형식이다.
벽돌무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백제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양식의 무덤으로, 이는 백제가 중국 남조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그 문화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6호분 벽돌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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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은 기존에 발견되었던 송산리 벽돌무덤 6호분의 유입수를 막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무덤이 통째로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도굴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을 전혀 당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발굴되어서 전국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왕릉에는 내부 묘비석에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이라는 피장자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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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은 외부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무덤 내부에 유물이 풍부하게 남겨져 있었다. 유물은 모두 4,600여 점에 달하며, 국보로 지정된 것만 12건에 이른다.
특히 무령왕릉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석수와 도자기를 비롯하여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목관, 태국 및 인도와의 교류를 의미하는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백제의 수준 높은 국제적 문화교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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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은 수만 장의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만들었다. 무덤 안은 둥근 곡선의 아치형이다. 벽돌로 내부를 반듯하고 정교하게 쌓았다. 전체 벽돌은 가로로 4단을 쌓고 세로로 일단을 쌓았다. 벽돌로 이루어진 벽면에는 연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벽에는 종지형 등잔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무령왕릉은 그야말로 내세의 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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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전시관에 나오니 새로 발굴된 29호분이 보호 덮개로 덮여 있었고, 오는 2023년 7월 말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한다는 팻말이 꽂혀 있었다.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됐지만 대부분 그 수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그보다 많은 고분이 있었다고만 추정돼왔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발굴되었다가 폐쇄된 29호분은 6호분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확인됐다. 천장을 비롯한 상부가 모두 유실된 상태였지만 하부는 잘 남아있었다. 굴식 돌방무덤과 벽돌식이 절충된 형식의 무덤으로 왕릉급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다.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에서 중국 양나라 사람이 만들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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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일대를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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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도 화려하게 피어 있는 아름다운 역사 산책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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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가 잘 다듬어진 여러 개의 봉분에는 굳게 닫힌 출입문이 있다. 예전에 수학여행 왔을 때는 열려 있어서 이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좀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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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의 출입문이다. 이렇게 입구가 버젓이 드러나 있으니 도굴꾼들이 쉽게 드나들며 유물을 몽땅 가져가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도굴이 어려운 구조인 신라왕릉과 달리 백제왕릉은 출입구가 따로 존재하는 굴식돌방, 벽돌무덤 양식이었기에 도굴도 매우 쉬웠다. 따라서 무령왕릉처럼 도굴을 피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덤 전실에 있었던 진묘수가 무덤을 잘 지켜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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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모두 4구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위에서부터 1, 2, 3, 4호분이다.
이 무덤들은 모두 굴식돌방무덤 형식이며 역시 도굴되어 별다른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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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에서 내려다본 고분군 너머로 공주 시가지가 보인다. 백제 웅진시대에도 저 산기슭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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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양쪽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철쭉이 활짝 피어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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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는 새로 지어진 숭덕전이라는 사당이 있다
. 이곳은 웅진백제시대의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의 위패를 모시고 백제 옛 왕조의 영광을 기리는 곳이다. 매년 이곳에서는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첫날 웅진백제대왕 추모제가 열린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문화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학술 가치가 매우 높은 고분군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자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된 유적이다. 무령왕릉마저 도굴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백제의 예술품이나 국제무역수준도 묻히고 말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면서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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