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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용현계곡에 보현사지 절터

2023.03.05(일) 10:46:36 | 캔디요기 (이메일주소:king2001kak@naver.com
               	king2001kak@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원사 절터에서의 유물들
▲ 보원사 절터에서의 유물들

이곳은 서산의 아라메길 1코스중 지나갈 수 있는 절 터입니다. '아라'는 바다라는 고유어이고, 산을 가리켜서 '메'입니다. 서산은 바다와 산이 만나 자연조차도 함께 어울려진다는 풍요로움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서산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정말 풍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1

보원사지(보원사 옛 절터)
▲ 보원사지(보원사 옛 절터)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2

멀리서 보이는 5층 석탑
▲ 멀리서 보이는 5층 석탑

서산의 가야산은 불교에서 신성시 한다는 코끼리에서 유래되었음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불교 유적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가야산 일대를 내포지방이라고 불려졌고 택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합니다.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의 유물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어서 1968년 이후에는 백제시대의 절터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일제 강점기에 폐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2005년 정비 조사를 실시하여 12년에 걸처서 발굴을 하였으며 보원사지 당간지주, 오층석탑, 법인국사탑등 보물 5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제 보원사
▲ 현제 보원사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3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4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5

용현계곡에보현사지절터 6

통일신라시대 화엄 10찰일 정도로 내포에서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이후 서산지역의 불교역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철조여래좌상은 우람한 모습에 사람을 압도하는 얼굴이 직사각형의 미소를 머금은 상으로 두 손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고려초기 철불의 특징과형식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치는 사리통에 조각된 사천왕상 조각과 사리병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이 투렷하게 관찰되며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사리통의 사천왕상 조각을 보노라면 당시 불교 공예기술을 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개수대
▲ 그 당시 개수대

맷돌의 역활
▲ 맷돌의 역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씻어나온 쌀로 봉양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래에는 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도 있습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씽크대 역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맷돌로 추정되는 이 조형물도 거대합니다. 분명 이곳은 엄청 큰 사찰이었음입니다.
역사는 흘러 흘러서 지금의 시대가 왔는데도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조선의 시대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는 말은 진심인 듯 합니다. 

현 보원사 사진찍기 이쁜 곳
▲ 현 보원사 사진찍기 이쁜 곳

보원사지 옆으로 보원사로 이용 중인 절이 있습니다. 언제나 보원사의 옛 절이 복원 될수 있을까요? 


보원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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