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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고향의 폐허를 상징하는 애달픈 묘비, 판교극장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11.14(월) 22:39:1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판교극장

▲ 판교극장



가던 길을 돌려서 서천군 판교 읍내로 방향을 튼 때는 하늘마저 유난히 청명한 10월 중순의 오후였다. 옛 판교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판교마을을 둘러볼 참이었다. 작년에 현암리 일대의 건물과 공간을 묶어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는 곳이다. 

‘구)역전 소나무’라는 안내 팻말이 있는 나이 든 소나무 앞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해설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시선에 여행자의 호기심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도시에서 왔을 그들 여행자에게 판교는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

판교는 그 앞에 많은 수식어를 거느리는 곳이다. 무엇보다 판교 스스로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누군가는 시간이 잠들어 있다고도 하고, 시간이 고여 있다고도 말한다. 시간이 박제되었다고도 하고, 시간이 저 먼저 가버렸다고도 쓴다. 그래서 레트로 감성을 누리고 싶어 하는 호사가들에게 판교는 오래된 기억의 저장소가 된다.

그러나 오늘 내가 바라보는 판교는 죽은 이들의 미래를 품고 있는 유적지이다. 그 시절의 ‘장미사진관’이며 ‘삼화주조장’이며 하는 것들이 품고 있었을 미래를 상상해 보라. 이 지역 최고의 문화시설로서의 ‘판교극장’이 가꾸어 피우려던 삶의 질을 떠올려 보라. 그렇게 꿈꾸던 판교의 미래는 쇠락을 견디다 못해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 

판교극장은, 장미사진관은 판교의 폐허가 아니라 우리 농촌의 폐허다. 나의 고향의 폐허를 기념하는 애달픈 묘비다.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일어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새긴 유럽의 어느 묘비처럼, 판교도 잠시 잠들었다 다시 깨어날 수만 있다면 그깟 인사쯤이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국가 등록문화재 판교마을. 현재와 미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과거를 지우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또 그 유적을 보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70년대 이후 도시화의 물살에 휩쓸려 모두가 썰물처럼 이곳을 빠져나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밀물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2021년 12월 말 기준, 고령화 지수를 나타내는 판교면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무려 53.5%다.
/윤성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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