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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반짝이는 회중 시계와 윤봉길의사 기념관

2022.07.24(일) 00:27:18 | 랄랄라아줌마 (이메일주소:orangebabo84@naver.com
               	orangebabo8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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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랑 시계 바꾸시죠.”
흠집하나 없는 윤봉길의 시계는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제 시계는 얼마 전에 육원을 주고 새로 샀습니다. 선생님 시계는 이원이니까 저한테 주십시오.
어차피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 쓸모가 없습니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주머니에서 꺼낸 금빛 회중시계보다도 독립에 대한 윤봉길의사의 결연한 마음이 더 반짝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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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겨레에 바친 윤봉길의 독립심을 배우며, 느낄 수 있는 공립박물관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해 있다. 기념관이 위치한 이곳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기념관 내에는 윤봉길 의사 유품인 보물 제568-2호, 제 568-3호 등 윤의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유적은 크게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 유물을 전시한 윤봉길의사기념관, 성장가인 저한당, 도중도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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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열사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고 툭 던진 물음에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생각에 잠기고, 정확한 뜻을 검색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처럼 직접적인 무력으로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을 일컬으며, 유관순 열사, 이준 열사처럼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저항하다 의롭게 죽은 사람, 주로 맨몸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을 열사라고 한다.

모든 역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사실과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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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공부도 잘했을 뿐 아니라, 싸움도 잘해 줄곧 골목대장 노릇을 하곤 했다. 이후, 1919년 12세 일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며 덕산 공립보통학교(일제가 식민지 교육을 위해 세운 4년제 학교로 200여명의 학생과 8,9명의 교사가 있었음)를 자퇴하게 된다.

매헌의 항일정신은 이 시기부터 형성되었다. 새로운 교과 과정을 기대했지만 식민지 교육에 실망하였다.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천황폐하를 중시해 가르쳤기 때문이다. 일본인 교사는 왜 제복을 입고 칼을 차는지 등 회의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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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표사건의 일화

윤봉길읜 농촌계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이는 한 청년이 인근 공동묘지의 묘표를 모조리 뽑아 와서 자신의 아버지 묘표를 찾아달라고 요청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은 어렵지 않게 묘표를 찾아 주었지만, 이 청년은 정착 묘표를 뽑은 자리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 자신의 아버지 무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무덤 위치까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매헌은 무지가 나라를 잃게 만든 원인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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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출가생불환 

1930년 3월 6일 어머니께 한 구절의 말만을 남기고 고향을 떠난 23살의 매헌은 중국으로 가는 열차에서 일경에게 불심검문을 당하여 선천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고 말았다. 혹독한 신문을 받은 매헌은 무려 보름이 지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선천 시내의 '정주여관'에 묶게 되었고, 이 곳에서 독립운동에 뜻이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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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홍커우 공원에서 물통형 폭탄을 던지고 도시락형 폭탄을 집어 들려 했지만 현장에서 체포된다. 그는 홍커우 공원 맞은편에 있던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취조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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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는 헌병대 수사관에 의해 혹독한 고문과 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후는 없고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조선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거사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경은 상하이 시내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거동이 수상하거나 용의가 있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 동아일보에서는 바로 다음날 홍커우 공원 의거 보도가 났고, 뉴욕 이브닝 포스트, 런던 타임스, 런던데일리 뉴스 등 세계 신문과 잡지에까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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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틀대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에서 순국, 처형되어 암장하였다.
암장이라는 것은 무덤이나 화장없이 그냥 묻어 어디 있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다. 묶여 있었던 형틀도 기념관 내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일제의 잔혹함과 윤봉길 의사의 애국심에 대한 생각으로 순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나이 겨우 25살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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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돌아오는 길 조차도 순탄치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고 대한민국은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5년 행방 이후 백범은 동경에 있는 신조선건설동맹 위원장이었던 박열에게 매헌의 유해봉환을 부탁했다. 이에 박열, 서상한, 이강훈의 주도록 이루어진 '대한순국열사 유골 봉환회'가 조직되었다. 

1946년 3월 2일 서상한 선생을 필두로 발굴단은 가나자와에 도착하였지만 극비리에 암매장되었기에 매헌의 유해발굴은 쉽지 않았다. 발굴단은 가나자와시 노다산에 있는 육군묘지와 시영 공동묘지를 재일교포 40여명과 수색했지만 매헌의 묘표는 흔적도 없이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도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유해 발굴은 점점 더 막막해져 갔다. 그러던 중 암매장 장소를 알게 된 발굴단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는데....

관리사무소와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 하치장 사이의 좁은 통로에 매헌의 시체를 매장하여 사람들이 짓밟고 다니게 하였던 것이었다.

새로운 관에 옮겨진 매헌의 유골과 유품은 도쿄로 향한 뒤, 이봉창, 백정기 두 의사의 유해와 함께 13년만의 귀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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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둘러보고 매화꽃 작은 도서관에 들어서서 후기를 적은 메모를 붙이곤 숭고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던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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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포토존 겸 VR 체험 등 아이들이 호기심 갖고 윤봉길 의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직원분이 오셔서 VR 체험하는 것을 도와주셔서 더 재미있었다는 첫째였다. 둘째는 아직 키가 140cm가 안 되어서 체험을 못 하였지만, 보호자의 지도 아래 체험을 해 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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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하면 막연하게 도시락 폭탄만 기억이 났지만, 그의 일대기를 알고 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15살에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였던 윤봉길의사의 독립에 대한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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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은 뜨거운 여름날 시원하게 여름을 즐기며,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보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어 최고의 교육장인 것 같다.


공립박물관 윤봉길의사기념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관람시간   하절기 3월-10월 9:00-18:00
                 동절기 11월-2월 9:00-17:00
                *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관 람 료    무료
문의사항    041-339-8231~5, 8238(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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