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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산 유일의 서원인 용강서원과 권충민공 순절비

금산군 제원면 금강 가에 있는 문화재

2022.05.27(금) 04:53:46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금강(錦江)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등을 흐른 후 공주시, 부여군, 논산시 등을 거쳐 황해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 길이가 407.5㎞에 이르는 강으로 지나가는 곳마다 이름이 다르게 불리고 있습니다. 금강의 상류 지역인 금산군에서는 '적벽강(赤壁江)', 공주시 일대에서는 '웅진강(熊津江)', 부여군 지역에서는 '백마강(白馬江)' 등으로 불리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1

이곳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일대에서는 금강을 용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용화리 앞 강물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2

용강을 바라보는 곳에 아담한 용강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산에는 조선 후기 건립된 서원으로 용강 서원 외 성곡 서원을 비롯하여 산천재 서원, 유곡 서원, 반계 서원 등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금산의 유일한 서원은 용강 서원의 용강 서당뿐 입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3

용강서원은 용강(금강)이 잘 내려다 보이도록 축대를 쌓고 여러 돌계단을 거쳐 문에 이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4

보통 때는 문이 잠겨 있다고 하는데, 제가 방문하는 날은 운 좋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원이나 사당에는 외삼문·내삼문 등이 있는데, 이곳에는 작은 정문인 평삼문과 협문이 하나씩 있을 뿐입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5

용강 서원(龍江書院)은 조선 숙종 42년(1716)에 지역의 노론계 유지들이 세워서 자제들의 강학 공간으로 사용하고 관련된 유학자들을 모셨습니다.
초기에는 송준길, 유계, 송시열 세 분만 배향되었고 18세기 말 김원행, 송명흠 두 분이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유계는 병자호란 이후 한동안 금산에 머물며 학문에 전념했고, 송준길, 송시열과는 동문의 관계였습니다. 세 분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어 3인이 나란히 배향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의 용강서원에는 유학자들을 배향하는 사당은 따로 없고 강학 공간만 남아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 폐쇄되었으나, 1910년경에 지역 유림들이 헐린 목재를 모아 정면 5칸 측면 4칸의 용강서당을 짓고, 유림의 회합 및 자제 교육의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6

강당 대들보 사이에 걸린 현판에는 용강서원이 아닌 용강서당(龍江書堂)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뒤 윤문당(崙文堂?)이라고 쓰인 현판 아래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창문이 뚫려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7

대들보에는 단청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합니다. 
가운데에는 대청마루가 있고, 양옆에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이곳이 최근까지 한학을 가르치던 서당인 것 같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8

정류당(淨流堂)이라는 현판 아래에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자제들에게 한문 공부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9

왼쪽 방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뭔가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10

추운 계절이면 온돌방을 따스하게 하기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어 고향 생각이 나게 하였습니다.
용강서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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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서원에서 2km 남짓 떨어진 제원대교 서쪽 끝부분에 '권충민공 순절비' 모셔진 자그마한 비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권충민공에 대해 간단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금산유일의서원인용강서원과권충민공순절비 12

충민(忠愍)은 임진왜란 때에 금산으로 쳐들어온 왜적을 맞아 개티강 가에서 전투를 벌이다 아들 권준과 함께 순절한 권종의 시호입니다. 
당시 금산군수였던 권종은 200명도 안되는 병사를 이끌고 제원찰방(濟源察訪) 이극경(李克絅)과 합세하여 적을 기다렸습니다.  
한편,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에게도 격문을 보내어 협력하여 방어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22일 왜적이 대거 내습하자 하루종일 대전하였으며, 다음날 격전 끝에 아들 권준(權晙)과 함께 순국하였습니다.
 
며칠 뒤 고경명·조헌도 순국하였습니다. 군민들이 충의에 감복하여 시신을 거두어 포천의 선영에 장사지냈습니다. 추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금산에 순의비(殉義碑)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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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절비는 높이 176cm, 너비 51cm, 폭 40cm이며 일제시대 때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해방 후에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권종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도원수와 사촌 간이라고 합니다. 출생 연도가 불확실하여 어떤 글에서는 권율의 사촌 형으로, 또는 사촌 동생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1554년생으로( 권율, 1537~1599)보다 17년 아래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권율 장군의 사촌 동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권충민공 순절비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일대를 흐르는 금강 주변에 세워져 있는 용강서원은 금산군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이라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장렬히 전사한 권종의 비석이 모셔져 있는 권충민공순절비도 되새겨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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