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앞의 붉은 목단이 부처의 마음인가!!
▲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경내에 꽉 차게 걸려 있는 연등들
1400여 년의 역사 속에 많은 중생들의 발길이 닿았을 산사.
주변의 우거진 녹음, 대웅전 앞에 피어있는 붉은 목단의 초연한 모습,
대웅전 높은 처마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무량사(無量寺)에 올 때마다 생사를 초월한 듯한 풍광에 사로잡힌다.
막바지 봄의 선물을 마음에 담아왔다.
▲ 무량사 일주문
▲ 무량사 대웅전
통일신라 천년고찰로 ‘무량(無量)’이란 셀 수 없다는 뜻,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는 곳이 바로 극락이니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곳이 바로 무량사라 한다. 국내 사찰 중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 무량사 오층석탑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33호로 지정된 무량사 석등과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무량사 오층석탑, 절 문 앞에 있는 거대한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의 부도 등이 있다.
산신각에는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영정각에는 김시습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김시습 영정
▲ 김시습 부도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질탕(跌宕)하여 명리(名利)를 즐겨하지 않고 생업을 돌보지 아니하여, 다만 청빈하게 뜻을 지키는 것이 포부였다. 본디 산수를 찾아 방랑하고자 하여, 좋은 경치를 만나면 이를 시로 읊조리며 즐기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지만, 문장으로 관직에 오르기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하루는 홀연히 감개한 일(세조의 왕위찬탈)을 당하여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道)를 행할 수 있는데도 몸을 깨끗이 보전하여 윤강(倫綱-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 김시습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후지
▲ 동자승
▲ 석등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 모습
마음을 닦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의 일생은 동가숙서가식하는 떠돌이의 삶이었지만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지식인의 의무에는 누구보다 엄격하였다. 율곡 이이로부터 백세의 스승이라는 칭송을 들었던 김시습. 오늘도 걷는 이길, 그가 걷던 그 날의 바람이 불어온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