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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면암 최익현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린 '모덕사'

거주공간, 유물전시관, 저수지 등 주변 볼거리도 충실히 갖춘 곳

2022.04.18(월) 22:46:17 | 임중빈 (이메일주소:joongbin2@naver.com
               	joongbin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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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라고 하여 사찰인줄 알고 방문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을 텐데요
. 이곳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최익현은 철종 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현감까지 오른 이로서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한 인물입니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가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가 되었고 끝내 풍토병으로 순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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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였던 최익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 바로 모덕사입니다
. 실제 모덕사는 1900년부터 1906년까지 선생이 살았던 고택에 마련된 사당으로 선생의 유물 전시관, 영정을 모신 영당 등이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다른 사당에 비해 규모가 크고 건물이 많아서 사찰로 착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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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를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와 모덕사라 불린다고 합니다. 실제 살던 터인 만큼 선생이 거주하던 중화당도 보이고, 여러 유물, 서책이 보관된 춘추각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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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당과 달리 건물을 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넓은 터가 주는 분위기도 굉장히 멋있습니다. 사당 주변으로 저수지가 있어서 산책길을 걸어볼 수도 있으니 더욱 여행하는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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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를 모신 사당이라는 편견을 깨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익현 선생의 당시 거주공간, 또 유물전시관 그 옆으로 저수지까지 볼거리가 많은 공간이니 꼭 한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해설사님의 해설도 받으며 돌아보면 재미가 두 배이니 이 부분도 놓치지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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