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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경, 김대건신부 첫 사목성지를 찾아서

2022.04.11(월) 21:21:29 | 젊은태양 (이메일주소:claudi00@naver.com
               	claudi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강경, 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

▲ 강경, 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


충남은 서해와 맞닿은 곳이라서 중국을 통해 전달되는 신문물이 배를 타고 충남의 해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압록강을 넘는 북쪽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육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배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편리하고 많았을 것입니다.

중국 해안에서 출발한 배는 충남 해안으로 들어왔는데, 여러가지 서양의 종교도 이런 길을 밟으며 한반도로 유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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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출신 첫 로마가톨릭교회 신부가 된 김대건(1821.8.21~1846.9.16) 신부도 1845년에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8월 31일에 상해를 출발해서 서해를 건너 금강을 따라 올라오다가 10월 12일에 충남 강경포구 부근의 황산포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강경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으로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1년도 되지 않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사목활동을 했지만,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서 '수선탁덕(首先鐸德-첫번째 성직자라는 중국식 칭호)'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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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가 입국하던 19세기의 강경은 원산항과 함께 조선 2대 포구였던 곳이었고, 강경시장 또한 대구 서문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일 정도로 번창했던 시기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황포항 외진 곳에 상륙해서 강경 사람 구순오 집에 한 달 남짓 머물며 첫 사목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구순오의 집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위치는 이 기념공원 옆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 현양비에는 김남조 시인의 서시, '시로 쓴 김대건 신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말할 수  없어라/온 세상의 말로서도/이 신비 나타낼 수 없어라/신의 특별하신 간택이/만인 중에서 가려뽑은 자에게/성령의 불의 인(印)을 찍으심을" (김남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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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21년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유네스코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세계의 인물로 선정했는데, 국내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하며 많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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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목성지 기념공원 옆으로 김대건 신부가 한 달 동안 머물렀던 구순오 집터가 있습니다.
지금 봐도 넓지 않은 공간에 집도 있고 마당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으로부터 177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이 주변이 매우 조용한 동네인데, 당시에는 중심지일 정도로 번창한 곳이었다고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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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잔디새싹이 트기 전이었는데, 봄이 너무 짧아진 경향이 있어서 지금은 모두 푸릇푸릇할 것입니다.
떠들썩하지 않고 잔잔하면서 품위있게 세워진 김대건 신부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는 않는 투각 작품이지만 그것보다도 형상으로 비워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더 느끼게 만드는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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