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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날 좋은 청명에 찾아가본 부여구아리 백제유적

2022.04.05(화) 13:26:23 | 서영love (이메일주소:hush7704@naver.com
               	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제의 고장 부여의 부여군청이 자리한 곳의 바로 옆에는 조금만 걸어나가도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여는 어디를 보아도 옛 흔적이며 유물들이 남아 있는 고장입니다. 날이 좋은 날 부여로 찾아가서 한낮의 시간으 보내보았습니다. 

날좋은청명에찾아가본부여구아리백제유적 1


원형교차로에서 매번 지나쳐가다가 이번에는 공원을 가듯이 살포시 들려보았습니다. 부여구아리백제유적지는 부여군청의 바로 옆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경찰서 신축과정에서 '天王(천왕)'명 수막새와 연화문 수막새편이 출토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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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있어서 부여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이 아니면 이곳이 유적지인지 모를겁니다.  1966년에 상수도 송수관공사 때 인접도로변에서 동제귀형식판(銅製鬼形飾板)이 출토되어 중요한 유적지로 주목받았는데요. 현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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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구아리 유적은 그 중 간선도로 일부에 해당하는 중앙로의 북편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적은 금강의 우회부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유적을 중심으로 북편은 표고 106m의 부소산이 금강에 임해 자리하고, 남편은 시가지와 충적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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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중요한 유적은 바로 우물이라고 합니다. 2기의 우물시설은 모두 추정수로 바닥면인 풍화암반층을 깊게 판 뒤, 기초를 닦고 석축을 쌓아올렸다고 합니다.  북편 우물지가 동서 약 515cm, 남북 약 325cm, 남편 우물터가 동서 약 251cm, 남북 약 257cm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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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기의 우물터는 출토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에 구축되어 백제가 쇠망하면서 함께 폐쇄된 것으로 여겨져 백제시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물인지 알 수 있도록 잘 조성해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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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이라는 절기에 와서 그런지 몰라도 나무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공원입니다. 주변에는 잘 정비된 주택이 있어서 살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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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청명이라는 절기답게 봄꽃이 피어 있네요. 유적지의 중앙에 방형의 이중공(二重孔)이 있는 방형목탑심초석으로 알려진 석재와 천왕명 수막새가 확인되어 이 곳이 천왕사터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시간이 지나서 더 발굴해보면 사실을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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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청과 구아리 유적지를 이어주는 원형교차로에는 성왕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령왕의 아들로 이름은 명농. 즉위 후 서울을 웅진에서 사비로 옮겨 안팎의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국호를 '남부여'라 개칭하여 부여족의 전통을 강조한 성왕은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한 백제의 제 26대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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