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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논산의 명소 세계유산 돈암서원을 돌아보고

예학의 거두 김장생 선생을 모신 서원과 사당

2022.03.12(토) 07:42:08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몇 년간 충남도민리포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충청남도 일원에 산재한 각종 문화유산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서원이나 사당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문이 잠겨 있었고 규모나 모양이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돈암서원을 방문하기 전에는 별로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저 예학의 거두 김장생 선생을 모신 사당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하니 문은 열려있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돈암서원 전경 - 출처 : 돈암서원 홈페이지
▲ 돈암서원 전경 - 출처 : 돈암서원 홈페이지

그런데 돈암서원에 와서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규모에서도 그렇지만, 아름다운 건축물과 짜임새 있는 구조, 주변 환경이 여느 서원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서원, 당시에도 김장생이는 인물이 대단한 평가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돈암서원 한옥마을
▲ 돈암서원 한옥마을

돈암서원 앞에는 꽤 큰 한옥 체험마을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건설사와 소송에 휘말려 문을 못 열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빨리 해결되어 이곳에 머물면서 힐링도 하고 주변 문화 유적 답사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하여간 한옥마을 앞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어서 이곳에 파킹을 하고 잠시 한옥마을 정원을 산책한 후 바로 이웃에 있는 돈암서원으로 향했습니다.


돈암서원 홍살문과 하마비
▲ 돈암서원 홍살문과 하마비

아!! 집사람과 내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널따란 구릉지에 시원하게 펼쳐진 돈암서원의 전경이 그림 같았습니다.  

홍살문 옆 사각기둥 모양의 하마비가 먼저 눈에 뜨였습니다. 하마비(下馬碑)는 말 그대로 말에서 내리라는 표지석입니다.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오라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 서원, 향교 등 홍살문 옆에 세워서 임금이나 선열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돈암서원 산앙루
▲ 돈암서원 산앙루

거대하고 화려한 누각 산앙루가 먼저 맞이합니다. 이 누각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는 것을 보면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암서원 입덕문
▲ 돈암서원 입덕문

돈암서원의 정문 역할을 하는 입덕문(入德門)은 솟을대문 형식을 하고 있지만, 뜻밖에도 삼문이 아닌 외문이군요. 여하튼 문이 활짝 열려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돈암서원 배치도
▲ 돈암서원 배치도

돈암서원은 원래 김장생 선생을 모시기 위해 그분의 제자들이 세운 서원입니다. 김장생은 서울 출신이지만, 벼슬을 버리고 이곳 연산에 내려와 예학에 대해 저술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지금은 계룡시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논산이었던 곳에 사계고택이 있고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 그분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습니다. 돈암서원도 그중의 하나입니다.돈암서원은 김장생 선생이 돌아가신 3년 후인 1634년(인조 12)에 그분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에서 출발하였으며, 이후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1660년(현종 원년)에 이르러 ‘돈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받고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지역의 공론과 학문을 주도했습니다.
 
원래는 이곳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숲말 산기슭 ‘돈암’이라는 바위 옆에 세워졌는데 지대가 낮아서 홍수 피해가 심해 1880년(고종 17)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돈암서원의 강당들
▲ 돈암서원의 강당들

유림들이 김장생 선생을 모시면서 공부하던 강학 구역은 양성당(養性堂)과 동재인 거경재(居敬齋), 서재인 정의재(精義齋)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양성당의 서편으로는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 김계휘 선생께서 강학하시던 공간인 정회당(靜會堂)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돈암서원 응도당
▲ 돈암서원 응도당

돈암서원 안에서 가장 눈에 뜨인 건물이 대청마루가 아주 넓어 시원하게 보이는 응도당이었습니다. 응도당(凝道堂)은 원래 돈암서원의 옛터에서 중심 강당이었으나, 이전하는 과정에서 양성당이 먼저 강당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1971년 뒤늦게 옮겨 오면서 오른쪽 앞 동남쪽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응도당은 예학 이론을 건축으로 구현한 돈암서원의 중심 공간입니다. 응도당은 조선시대의 가옥 제도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도 유명합니다.


돈암서원 양성당
▲ 돈암서원 양성당

양성당은 김장생 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쳤던 강당이라고 합니다. 이 양성당을 기반으로 하여 제자들이 돈암서원을 건립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양성당이 응도당을 제끼고 중심에 자리한 것 같습니다.


돈암서원 강당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
▲ 돈암서원 강당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

강당 건물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은 하얀 고무신의 옛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돈암서원 장판각
▲ 돈암서원 장판각

장판각(藏板閣)은 김장생과 김계휘, 김집 선생의 책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입니다. 책판은 팔만대장경과 비슷한 모양으로 현재는 1,841판이 남아 있습니다.


돈암서원 장판각의 서책
▲ 돈암서원 장판각의 서책

서원에서 간행한 책은 김장생 선생이 생전에 집필한 예학서인 사계전서, 가례집람 등입니다. 현재 모든 책판이 보관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나라 인쇄 문화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자료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돈암서원 장판각 처마
▲ 돈암서원 장판각 처마

장판각 건물을 다시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곡선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돈암서원의 향나무
▲ 돈암서원의 향나무

정회당과 장판각 사이에 수령 300년의 향나무 한그루가 양팔을 구조물에 의지한 채 오랜 세월 돈암서원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너무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암서원 숭례사와 내삼문
▲ 돈암서원 숭례사와 내삼문

아쉽게도 내삼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숭례사(崇禮祠)는 김장생 선생의 사당입니다. 이후에 그분의 아들인 김집 선생을 추배하였으며, 송준길, 송시열 선생의 위패도 모시고 있습니다.이들 네 분은 모두 문묘에 종사하신 성리학의 거두로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개 중의 하나인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 시설입니다. 김장생 선생은 17세기 전반에 예학을 집대성해 사회에 보급한 인물입니다. 그의 제자들은 돈암서원을 세우고 예학에 관한 연구와 논의를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돈암서원은 예학 실천의 거점이었습니다.


돈암서원 얘절 교육 프로그램 - 출처 : 돈암서원 홈페이지
▲ 돈암서원 얘절 교육 프로그램 - 출처 : 돈암서원 홈페이지

돈암서원에서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만인소라는 예절 교육도 하고 있는데요, 어려서부터 배우는 올바른 예절 교육으로 착한 인성을 담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외에도 예절사관학교, 문화재지킴이 교육 등도 운영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돈암서원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donamseowon.co.kr/
 
 
오늘 논산시 연산면에 자리한 돈암서원을 돌아보면서 서원에 대해 새로이 느낀 게 많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안목도 한 단계 높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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