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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 논산영사재

반남박씨 집성촌 상월면 대우리의 느티나무 빨래터

2021.12.07(화) 07:20:00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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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입니다.
전국에 영사재라는 이름을 가진 재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논산에만 해도 연산영사재가 있고, 논산영사재가 있습니다.
영사재(永思齋)는 많은 문중에서 사용하는 흔한 이름입니다.
‘조상을 사모하는 재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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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줄기를 돌고 돌아 공주시에서 논산 상월면 대우리에 이르면 논산영사재의 입구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약 1.3km쯤 좁은 마을 길을 가다 보면 문이 없는 자그마한 재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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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맨 먼저 반겨주는 것은 논둑에 휘날리는 억새의 물결입니다. 억새밭 너머로 계룡산이 뻗어 내린 마지막 산줄기가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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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면 대우리 마을회관 및 경로당입니다. 새로 증축을 했는지 무척 깔끔합니다. 기념비에 2019년 10월에 완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우리는 마을의 모양이 소와 같다 하여 소울, 우곡(牛谷,), 대우동(大牛洞)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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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리는 반남(潘南)박씨의 집성촌입니다.
반남박씨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박응주이며, 조선의 실학자인 박세가, 박지원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고, 조선말 갑신정변을 주도한 박영효도 반남박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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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리의 동부는 계룡산 국사봉(國事峰)을 중심으로 해발고도 490여m의 비교적 높은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60여 세대의 100여 명의 주민이 주로 농사를 지으며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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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인 논산 영사재가 있습니다. 영사재는 마을 안쪽 끝 지점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데, 야트막한 구릉 지대 아래에 2단으로 높게 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아담한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영사재 앞 주차장 공터 한쪽에는 운동 시설 및 묘정과 함께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입향조인 박동민과 손자인 박세기의 신도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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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영사재는 예빈시참봉을 지내고,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박동민(朴東民, 1556~1593)과 사헌부집의를 지낸 아들 박휘, 손자 박세기(朴世耆,1618~1691) 3대를 제향 하는 재실입니다.
논산영사재는 1632년(인조10)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그 이후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쳤으나 기법이 우수하여 지금도 전형적인 재실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수할 때마다 중수기를 현판에 기록하여 재실의 변천사도 알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6일 향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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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재 옆에는 작은 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비각 안에는 박동민의 처인 전주이씨에게 내려진 열녀 정려와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박동민의 처인 전주이씨는 박동민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이 사실을 조정에서 알고 정려를 내렸다고 하는데 당시의 유교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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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재 아래쪽에는 수령이 400여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샘물이 있어 옛날에는 식수로도 사용하고 동네 주민들의 빨래터로도 이용되었습니다. 마침 이곳에서는 할머니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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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지나가신 뒤 텅 빈 빨래터를 보면서, 손이 무척 시릴 텐데 지금도 이렇게 손빨래를 하시는구나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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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줄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1년 내내 이렇게 흘러넘친다고 해요. 이 물은 주변 들판을 적셔 농사가 잘되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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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영사재 위 구릉에는 반남박씨 일가의 산소가 일렬로 늘어져 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크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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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대우리 마을 풍경입니다. 추수를 끝낸 논과 밭 사이에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집들이 무척 정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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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의 형상한 마을.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는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논산영사재와 마을을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지금도 할머니들의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빨래터가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우연히 알게 된 논산영사재에서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논산영사재>
지정종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
지정일 : 2002년 1월 10일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1길 42 (고정리)
시대 : 조선시대
종류/분류 :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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