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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주 웅진동 가볼만한곳, 한옥마을, 선화당, 관풍정

공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곳

2021.10.17(일) 07:26:07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한옥마을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공주 한옥마을 풍경
▲ 공주 한옥마을 풍경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 하얀 반달이 얼굴을 내밉니다.
기와지붕 처마와 소나무 줄기를 타고 청사초롱이 휘날립니다.
울긋불긋 국화꽃이 제철을 만났습니다.
 
공주 한옥마을 가을 풍경
▲ 공주 한옥마을 가을 풍경
 
공주의 마스코트인 고마곰과 공주가 연밭 앞에서 어서 오라고 반가이 맞아줍니다.
연밭은 화려한 꽃을 떨군 지 오래지만 커다란 연잎이 우거져 연못을 덮었습니다.
붉고 노란 국화의 물결이 한옥마을을 장식하고 청사초롱 줄에 반달이 걸렸습니다.

공주 한옥마을 감나무와 충청포정사
▲ 공주 한옥마을 감나무와 충청포정사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 뒤로 커다란 문루가 보입니다.

공주 충청포정사 문루
▲ 공주 충청포정사 문루
 
기다란 기와 담장 가운데 2층 누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공주한옥마을 북쪽에 자리한 충청감영 복원지입니다. 충청감영은 조선 초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년) 충청도 관찰사 유근의 건의로 공주 공산성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런데 1653년 관찰사 강백년이 봉황산 아래에 감영을 대대적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자리 일대에 충청감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대전으로 도청이 이전되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선화당과 포정사, 동헌 등의 건물만 이전하여 복원되었습니다. 지금은 동헌마저 이전되고 선화당과 포정사만 남아 있습니다.

공주 충청포정사 문루
▲ 공주 충청포정사 문루

가까이 다가가 쳐다 봅니다.
충청포정사(忠淸布政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장엄한 규모의 문루입니다.
조선시대 공주에 세워진 충청감영의 정문입니다. 아래층은 큰 문을 달아 감영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2층은 통칸으로 만들어 누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정문에 있던 것을 옛 공주군청으로 옮겨서 사무실 건물로 사용하다가 1993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이 포정사 문루는 그대로 두고 원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정문에 새로운 포정사 문루 모양 건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공주 충청감영 복원지 좁은 문
▲ 공주 충청감영 복원지 좁은 문

이곳 담장에는 작은 문이 두 개가 더 있습니다. 쪽문 사이로 연미산이 보입니다.

공주 선화당
▲ 공주 선화당

선화당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충청감영의 주요 건물입니다.
선화당(宣化堂)‘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떨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순조 33년(1833년)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현재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것을 1937년 중동으로 옮겨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하였다가 1992년 현재의 위치에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공주 선화당
▲ 공주 선화당

복원된 건물은 원형보다 축소되었으나 외관이 간결하여 조선시대 관청 건물의 위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복제품
▲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복제품

마당 한가운데에 측우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빗물을 그릇에 받아 비가 온 양을 재는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년)에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헌종 3년(1837년)에 만들어진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가 유일합니다. 화강석 받침대에는 영조 46년(1770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받침대는 대구에 있던 것으로 측우대와는 별도의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2006년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모형을 제작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2020년 국보 제329호로 지정되어 현재 기상청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이전된 충청감영 동헌터
▲ 이전된 충청감영 동헌터

그런데 충청감염의 동헌이 있다는 자리가 텅 비어 있고 무심한 잔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동헌(東軒)은 조선시대 공주 목사가 업무를 보던 곳입니다. 원래는 공주의료원에 있던 것을 1994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이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공주시 중동 옛 의료원 부지에 대대적으로 목관아 복원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목관아는 공주목사가 집무를 보던 동헌을 비롯해 ▲책방 ▲내아(지방관의 관사) ▲작청(향리의 집무 공간) ▲의생방(의술과 복지공간) ▲제금루(목관아 정문 역할) 등으로 복원할 계획입니다.

공주시는 공주목과 충청감영으로 대표되는 충청도 수부 도시로, 역사적 정체성과 위상을 확립해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나아가 원도심을 또 하나의 역사문화관광 핵심 거점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공주 관풍정 관풍루
▲ 공주 관풍정 관풍루

이제 담장 너머에 있는 관풍정으로 가 봅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관풍루라는 정자 옆으로 호박넝쿨이 자라는 담장이 있어 시골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옛 관풍정의 모습
▲ 옛 관풍정의 모습

관풍정은 국궁장입니다. 1635년 공산성 쌍수정 뒤쪽에 건립되었다가 1936년 공원 남쪽으로 이전되었으며 1991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공주 관풍정 과녁
▲ 공주 관풍정 과녁

과녁 뒤 기다란 담장 너머에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풍정 게시판
▲ 관풍정 게시판

국궁(國弓)은 한국인의 전통 궁술, 또는 전통 활을 일컫습니다. 택견, 씨름에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활쏘기는 선사시대부터 사냥의 수단이나 전쟁의 목적으로 행하여졌으며, 시대의 발달과 더불어 활쏘기는 대중화된 무예로 발전하였으며 양반의 자제는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과목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길러왔습니다. 관풍정에는 활을 쏘는 방법, 지켜야 할 예절 등을 붙여 놓고 어르신들이 활을 쏘고 계셨습니다.

관풍정에서 활을 쏘는 궁사들
▲ 관풍정에서 활을 쏘는 궁사들
 
한 사람씩 차례로 과녁을 향해 활을 쏩니다.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
▲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

화랑의 후예답게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진지하고 힘이 넘칩니다.
활은 크게 각궁과 시위, 화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궁은 대나무나 물소 뿔 등으로 만들고 시위는 줄을 말하며, 화살은 대나무 등으로 만듭니다.

관중 표시등
▲ 관중 표시등

예전에는 과녁의 중앙에 화살이 맞으면 깃발을 흔들며 ‘관중이오’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리를 내며 반짝이는 불빛이 대신하는군요.

올림픽 때면 금메달 보따리를 안겨주는 양궁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뛰어난 활쏘기 능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그것은 예로부터 활쏘기를 숭상하고 사람들이 익혀야 할 무예로 이어 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대나무를 깎아서 활을 만들어 쏘면서 놀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은 문화 예술의 마을입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국립공주박물관, 고마아트센터, 공주문예회관,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린 공주 한옥마을과 선화당, 관풍정까지 주변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주는 가볼만한 곳이 참 많은 세계유산의 도시입니다. 공주에 오셔서 우리 문화의 향기를 직접 체험하고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보며 몸과 마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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