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무슨 나무를 상록수라 부르는지 아시나요?

서해가 보이는 '필경사'에서 상록수를 만나다.

2021.10.15(금) 09:58:23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농촌계몽운동 작가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충남 보령시 송악면 필경사.
▲ 농촌계몽운동 작가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충남 보령시 송악면 필경사 전경.

일제강점기 농촌 계몽운동의 선구자이자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의 ’필경사(筆耕舍)’를 다녀 왔습니다.  

충남 당진시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1932년 서울에서 당진으로 이주한 심훈은 2년 만인 1934년 현재 위치에 대지 661㎡에 건평 62㎡의 아담한 목조집을 짓고 필경사라 당호를 붙입니다. 낮은 자연석 기단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우고 측면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앞뒤로 나누어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필경
▲ 심훈 작 '필경'

외형은 벽체에 황토를 짓이겨 바른 전형적인 초가 형태로 농촌 마을 경관과 어울리게 전통 건축을 유지했지만, 구조적으로는 도시 주택 모양입니다. ‘ㅡ’형 초가집 모양에 전면과 측면에는 유리창을 달아 내부를 밝게 하고 현관을 비롯해 부엌과 안방, 사랑방까지 밖으로 통하는 문을 각각 달았습니다. 화장실과 욕실을 실내에 설치하고 마루와 사랑방 외부에 작은 베란다를 설치해 화분을 놓도록 배려한 점이 눈길을 잡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심훈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방문 아쉽게도 당시 문이 닫혀 보지 못했습니다.

필경사 전경.
▲ 필경사 전경 2. 화분을 놓는 발코니가 특이하다.

왼쪽에는 심훈의 묘가 있습니다. 원래 경기도 용인시에 있었는데 2009년 아들이 이곳 필경사로 이장 했다고 합니다. 묘비에는 그의 대표작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1919)’, ‘그날이 오면(1930)’, ‘상록수(1935)’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심훈의 묘.
▲ 심훈의 묘.

필경사 주변에는 측백과 향나무가 울창한데 이 역시 집을 지으며 심훈이 심은 것이라 합니다. 이제는 집을 덮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오른쪽 상록수문화관은 문학 단체와 학생들에게 문학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필경사 넓은 앞마당에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문학표지을 비롯해 심훈의 흉상과 캐릭터, 시비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상록수문학관 전경.
▲ 상록수문학관 전경.

심훈의 부조
▲ 상록수 문학관 앞의 심훈 부조.

한국문학의
▲ 필경사 잔디정원의 조형물

심훈
▲ 아이와 책을 읽는 심훈의 조형물. 

심훈
▲ '상록수' 주인공인 동혁과 영신의 조형물

그런데 심훈의 상록수는 무슨 나무일까요? 심훈은 소설 상록수에서 “회관이 낙성되는 날 그 기쁨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회원들과 함께 파다 심은 상록수들이 키 돋움을 하며 동혁을 반기는 듯”이라며 옮겨심은 나무의 종류를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소나무라고 밝힙니다. 지금도 필경사 주변에는 이들 4가지 상록수들이 사계절 푸르름을 발하고 있습니다.

상록수
▲ 소설 속 상록수는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소나무 등이다.

필경사의 바로 옆에는 당진시가 심훈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2014년 개관한 심훈기념관이 있습니다. 유족들이 기증한 육필 원고와 유품 등 4800여 점을 보유하고 매주 월요일과 명절 당일만 휴관하고 연중 개방됩니다.

심훈기념관 전경.
▲ 심훈기념관 전경. 정면에 펜을 형상화했다. 
 
기념관은 도로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기념관 옥상으로 바로 연결되는데 심훈의 대표적 저항시 ‘그날이 오면’ 시비가 설치돼 있습니다.

심훈 그날이 오면
▲ 심훈기념관 그날이 오면 시비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 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이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기념관은 그의 삶과 업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가이자 시인, 기자, 영화감독, 농촌계몽운동가로 삶을 연대적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품은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 형을 받고 학교를 퇴학당하고 중국 망명길로 시작됩니다.

3.1운동에 참여해 수옥중인
▲ 3.1운동에 참여해 투옥된 심훈.

중국에서 심훈은 이동녕, 이시영, 신채호, 여운형 등 지사들과 연을 맺으며 지내다 귀국 후 1926년 홍명희,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 등과 동아일보에 들어가고 이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기자로 활동하며 시와 소설을 집필하지만 번번이 일제의 검열로 책으로 발간하지 못합니다.

기자
▲ 심훈의 집필 조형물을 관람객들의 포토존으로 제공하고 있다.

언론사에 정착하지 못한 심훈은 부모님이 계신 당진으로 이주해 장편 소설 상록수를 집필합니다. 그는 민족의식과 계급적 저항의식을 지닌 작가였습니다. 상록수도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을 배경으로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수탈당한 한국농촌의 참상을 보여주고 농촌 계몽운동을 실천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모습을 사실주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기면관
▲ 심훈기념관 내 필경사. 

심훈의 필경사와 기념관을 둘러보면 상록수의 스토리를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농촌계몽의 뜻을 품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상록수 남녀 주인공은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채영신은 경기도 반월 샘골 마을에서 농촌 운동을 하던 ‘최영신’이며, 남주인공 박동혁은 심훈의 장조카로 역시 당진에서 공동경작회를 조직해 농촌 운동을 하던 ‘심재영’입니다. 이들 두 인물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이로 작가적 상상력입니다.

책상
▲ 심훈이 원고 집필시 사용하던 책상 .

상록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산골 마을에서 농촌 운동을 하다 과로로 26살의 젊은 나이에 숨진 최용신의 동아일보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심훈은 농촌의 빈곤과 무지의 원인을 가진 자의 횡포와 없는 자의 고통으로 대립시키고, 농촌계몽에 앞장선 두 주인공을 상록수처럼 푸르름을 잃지 않고 민족을 위해 생애를 바치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심훈기념관 인근에는 상록수에 둘러싸인 심재영의 고택이 있습니다. 심훈이 1932년 처음 당진으로 이주했을 때 이 고택에 머물며 ‘직녀성’과 ‘영원의 미소’를 집필했다고 합니다.

상록수 남주인공 심재영 고택.
▲ 심훈 장조카이자 상록수 남주인공 심재영 고택.

상록수는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현상 공모에 당선되어 장기 연재 됩니다. 이때 받은 상금으로 심훈은 상록학원을 설립하고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고 35살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요절합니다.

심훈의 문학세계는 민족주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1930년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시 ‘그날이 오면’과 장편 소설 ‘동방의 애인(1931)’이 대표적입니다. 지식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 ‘영원의 미소(1933)’〉와 자신의 첫째 부인을 모델로 한 직녀성(1934)을 통해 반봉건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조카 심재영이 주동하는 ‘공동경작회’와 어울리며 지난 생활을 소재로 한 장편 ‘상록수(1935)이 동아일보에 연재 됩니다. 이 소설은 1870년대에 러시아 지식인들의 브나로드 운동을 사상적 바탕으로, 1930년대 일제에 수탈 당하는 한국 농촌의 참상을 보여주고 농촌 계몽운동을 실천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대표작
▲ 심훈기념관 소장 심훈 대표작.

그럼에도 농촌의 어두운 면보다는 전원의 밝고 싱싱한 면을 너무 부각해 작가의 현실 감각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아울러 영신과 동혁의 농촌 운동이, 농민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좀 다른 소극적 양상으로 지식인의 계몽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성도 비판 받습니다. 아마도 일제의 검열을 피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코로나19 블루로 막바지에 달한 것 같습니다. 이번 어려운 시기만 지나면 위드코로나 시대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이때 필경사를 찾아 문학청년 심훈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근처에는 한진항이 있어 제철 전어와 대하가 한창입니다.
 

장군바라기님의 다른 기사 보기

[장군바라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