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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산에 남겨져 있는 청동기시대의 흔적 둔당리 지석묘

2021.09.30(목) 13:25:12 | 연주의 꿈꾸는 다락방 (이메일주소:yeonju7890@naver.com
               	yeonju789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서산 둔당리의 얕은 야산에 있는데, 원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시대에 도굴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1

서산의 둔당리 지석묘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가봅니다. 둔당리라는 지명은 나중에 다시 알아봐야겠습니다.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2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3

둔당리지석묘를 찾아서 안쪽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어디에 둔당리 지석묘가 있는지 계속 살펴보면서 들어갑니다.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4

드디어 서산의 둔당리 지석묘를 발견하였습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성행하여 초기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입니다. 보통 많이 모여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하나만이 남아 있네요.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5

형태상 바둑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8m, 너비 3.0m이며, 받침돌이 3개입니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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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독특해보이는 지석묘입니다. 안에서는 여러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살던 생활주거지가 주로 하천이나 낮은 구릉에 있었기 때문에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하천유역의 대지와 낮은 구릉에 많이 축조된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서산에남겨져있는청동기시대의흔적둔당리지석묘 7

지석묘앞에 핀 작은 꽃이 너무나 아름답네요. 서산 둔당리 지석묘(瑞山 屯堂里 支石墓)는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에 있는 청동시대의 지석묘입니다.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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