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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000그루 은행나무와 어우러진 ‘신경섭 고택’

구불구불 마을길을 따라 펼쳐진 은행잎 융단

2021.10.01(금) 16:37:52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령시 신경섭 고택. 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신경섭 고택의 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푸르렀던 여름의 풍경은 이제 노랗고 붉은 가을빛으로 본격적인 변신을 준비합니다. 아직은 지나는 이조차 별로 없는 한산한 시골 마을이지만, 이제 은행잎이 물들면 작은 축제가 열려 떠들썩해 질 것입니다. 따듯한 햇살이 좋은 오후 마당이 유난히 넓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은행마을 ‘신경섭고택’?고택을 찾아 은행잎을 밟으며 사색에 잠겨봅니다.

신경섭 고택은 조선후기 양반가의 대표적 한식가옥으로 유난히 커다란 마당과 은행나무가 특징입니다. 충남문화재자료 제29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팔작지붕에  ‘ㄱ’자 모양의 사랑채와 ‘ㅡ’자 모양의 안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ㄷ’자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문 옆으로는 별도로 행랑채와 곳간이 남아 있습니다.

신경섭 고택 안채.
▲ 신경섭 고택 'ㅡ' 형 모양의 안채.

신경섭 고택 사랑채.
▲ 신경섭 고택 사랑채.

신경섭 고택 행랑채와 .
▲ 신경섭 고택 행랑채와 곳간.

안채에는 안방과 대청, 건넌방, 고방, 부엌이 있고 사랑채는 안체를 향해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마당을 향해서는 툇마루를 놓았는데 지금도 목재 결과 고색단청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사랑방 옆 높은 누마루에서는 정원을 조망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상량문에 ‘숭정기원후계묘’라 적혀 1843년 신축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신경섭 고택 안채. 경사람이 살지 않아
▲ 신경섭 고택 안채. 사람이 살지 않아 부엌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신경섭 고택 안채.
▲ 신경섭 고택 안채 건넌방.

신경섭 고택 안채.
▲ 신경섭 고택 안채.

사랑채는 사방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안채에서 연결되는 곳에는 '모정문'이라 쓰여진 문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설치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뜻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신경섭 고택 사랑채 출입문.
▲ 신경섭 고택 사랑채 출입문.

신경섭 고택 사랑채 동측 툇마루.
▲ 신경섭 고택 사랑채 동측 툇마루.

신경섭 고택 사랑채 모정문.
▲ 신경섭 고택 사랑채 모정문.

동쪽의 대문에는 ‘평산신씨’ 문중의 효자 신석붕 효자정문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선에서 ‘열녀’와 ‘효부’는 국가적 포상 대상입니다. 열녀문과 효자문이 그것인데, 이곳의 효자문은 특이하게 정려각을 따로 만들지 않고 대문위에 편액을 걸었습니다.

효자
▲ 정려각 대신 고택 정문에 세운 평산신씨 신석붕 효자현판.

앞서 설명드리듯 신경섭고택이 특별한 것은 국내 최대 은행나무 집산지인 마을의 어우러진 풍광 때문입니다. 고택과 마을에는 가을이면 수령 100년 이상 은행나무 3000여 그루가 동시에 황금물결을 일으킵니다. 고택을 시작으로 옛 장현초등학교까지 구불구불 마을길을 따라 마치 진노랑의 융단을 깔 듯 은행길이 펼쳐집니다.

신경섭 고택의 은행나무 1.
▲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1.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2.
▲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2.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3.
▲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3.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2.
▲ 신경섭 고택 마당에 심어진 은행나무.

신경섭 고택 주변의 은행나무 2.
▲ 신경섭 고택 마당의 은행나무 2.

마을에 이처럼 은행나무가 많은 것은 은행을 여의주로 착각한 까마귀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을의 구전설화에 따르면 마을의 수호신이던 구렁이가 하루도 빠짐없는 천년의 기도 끝에 마침내 여의주를 물고 황룡으로 승천했는데,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까마귀들이 먹이를 구하다 발견한 노란 은행 알을 용이 물고 있던 여의주라고 착각하고는 보이는 대로 마을에 물고와 정성껏 키워 은행나무 집단 서식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은행마을에서 생산되는 은행은 국내 생산량의 5~10%를 차지해 전국 최고 집산지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은행나무 한그루에서 은행 몇 가마니씩을 수확해 생활에 보탬이 됐지만, 최근에는 수익도 일손도 없는데다 특유의 냄새로 수확조차 꺼려하는 수종이 되었습니다. 고택의 마당에는 그동안 켜켜이 쌓인 은행알이 이 같은 세태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지 않아 아쉽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고택과 함께 멋진 풍경을 자아낼 듯합니다. 올 가을이 가기 전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일 때 고즈넉이 산책을 하며 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어떨까요? 인생 샷을 남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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