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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귀부, 숭선군묘, 연평부원군신도비

공주시 이인면 가볼만한 문화재

2021.09.08(수) 06:36:58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앞 도로를 지나다 보면 문화재를 알리는 이정표가 몇 개 세워져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을 앞 논 어귀에는 금방이라도 기어 나갈듯한 오룡리귀부라는 거북석상이 하나 놓여 있고 철제 울타리가 접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등이 평편한 것으로 보아 이 거북 등에 비석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비석은 간데없고 거북만 우두커니 놓여 있군요.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1
 
이 귀부는 지대석과 귀부를 거대한 단일석으로 조각하였는데 귀두(龜頭)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목은 기다랗게 내뽑고 눈과 코는 왕방울같이 불거져 나와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분명 지체 높은 분의 비석 받침돌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2
 
이 귀부는 지대석과 귀부를 거대한 단일석으로 조각하였는데 귀두(龜頭)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목은 기다랗게 내뽑고 눈과 코는 왕방울같이 불거져 나와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분명 지체 높은 분의 비석 받침돌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마침 안내판이 있어서 읽어 봅니다.

공주 오룡리 귀부는 조선 12대 왕 인조의 다섯째 아들 숭선군의 무덤 입구에 세울 신도비의 받침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승선군이 죽은 뒤 11년이 지나 아들 동평군이 역적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면서 신도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귀부만 남았다.
왕족과 관련된 작품으로 조선시대의 귀부로는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마을의 좋은 기운이 귀부가 바라보는 쪽으로 빠져나간다는 전설이 있어, 귀부가 있는 오룡리에서는 이를 막고자 버드나무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3

아하, 그러니까 신도비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세워지지 못한 것이군요. 그러고 보니 오룡리 귀부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 커다란 묘지가 하나 보이네요. 저곳이 바로 숭선군묘입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4

오룡리귀부 바로 옆에 숭선군묘로 가는 좁은 길이 있습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5

오룡리 들판을 지나 숭선군묘 앞 민가 마당에 주차하고 소나무 우거진 잔디밭 사잇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풀 내음이 진동하는 것을 보아 최근에 잔디 깎기 작업을 하였나 봅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6

무덤 앞에는 하얀 무궁화가 만발했습니다. 단심이 없는 하얀 무궁화를 배달계 무궁화라고 하는데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7

야트막한 산기슭에 병풍처럼 소나무 군락이 에워싸고 있고, 기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봉분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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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니 묘소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묘 주위에는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습니다. 봉분 아랫부분은 화강석으로 둘레석을 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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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에 신하들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笏)을 들고 있는 것이 문인석(文人石)이고, 망주석(무덤을 꾸미기 위하여 무덤 앞의 양옆에 하나씩 세우는 돌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무인석(武人石)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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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앞에 있는 장명등(長明燈)입니다. 장명등은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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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명등 안쪽 즉 봉분 앞에는 고속(鼓石 상석을 받치는 북 모양의 둥근 돌)이 떠받치고 있는 넓은 상석(床石 제물을 차려놓는 돌상)이 있고 그 뒤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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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의 앞면에는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라고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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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뒤를 보니 영조 42년(1766)에 만들었다고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숭선군 징(徵)은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를 따라 공주(公州)로 잠시 피신한 일이 있었는데, 궁으로 돌아와서도 항상 공주를 그리워하더니 숙종 16년(1690) 임종 시 생전에 그립던 공주이니 사후에라도 가고 싶다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都城)에서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었고 그 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져 만들어졌다고 해요.
숭선군묘는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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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군묘를 돌아보고 나서 가까운 곳에 있는 연평부원군 신도비를 돌아보았습니다
. 비각은 최근에 보수하였는지 깔끔하게 단청이 되고 주변 조경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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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의 받침돌인 귀부(龜跌)는 자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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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문은 조익이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앞뒤로 빽빽하게 쓰인 비문에는 이귀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히 나타나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글을 새긴 비신과 비머리는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두 마리의 용과 구름을 조각한 비머리는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공주시이인면오룡리귀부숭선군묘연평부원군신도비 17
 <이귀 초상,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연평부원군은 인조반정의 주역입니다
. 1623년에(인조 1) 김류, 이괄 등과 함께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능양군)를 왕위에 오르게 하고 이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 좌찬성이 되었으며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연평부원군에 봉해진 분입니다이귀의 묘는 이인면 만수리에 있습니다.

공주시 이인면에는 승선군묘와 오룡리귀부, 연평부원군 신도비와 묘 등 문화재가 제법 많이 있어서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숭선군묘>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2-1

<연평부원군신도비>
충남 공주시 이인면 상하만길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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