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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늘 봄과 같이’ 따뜻했던 큰 선비

충남의 유학자들-논산 동춘당 송준길

2021.07.25(일) 21:36:3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scottju@korea.kr
               	scottju@korea.kr)

송준길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동춘당

▲ 송준길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동춘당



양란 이후 민생안정 강조

1606년 서울 정릉동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가문은 은진 미륵으로 유명한 충남 논산 은진면을 본관으로 삼고 있는 은진 송씨였다. 고려 태조 때부터 ‘덕을 품은 선비의 땅’으로 불리던 회덕(懷德)의 집성촌에 자신의 호를딴 동춘당을 세우고 출사보다는 학문에 전념하며, 그 곳에서 숨을 거둔 이 선비는 송시열과 함께 기호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송준길이다.

보물 209호인 국가지정문화재 동춘당은 ‘사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한다(與物同春)’는 뜻을 지닌다. 봄부터 겨울까지 자연의 질서에 짝을 이루는 사람의 덕목으로 인·의·예·지를 생각할 때, 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덕목인 ‘인(仁)’에 해당한다. 예서에 정통했지만 학파를 가리지 않고 두루 학풍의 영향을 받으며, 평생 사람을 살피고 배려한 대학자는 정치적 결단의 시기마다 ‘늘 봄과 같은’ 따뜻한 인간성을 보여주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억울한 죽음을 동정하고 그 아들의 계승권을 주장하여 인조의 눈 밖에 났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반대파에 대한 강경 처벌에는 늘 신중하였다. 양란 이후 사회적 혼란기 조선을 ‘병든 환자’로 비유하며 치유가 우선이라 올린 상소에는 북벌을 추진했지만 민생안정을 중시하는 그의 정치철학이 잘 드러난다.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던 그에게 나라의 위태로움 앞에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우고, 평생의 벗이 쓴 현판이 걸린동춘당 곳곳에서 백성을 배려한 큰 선비의 세심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구멍을 내어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한 것 또한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조차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언 충남역사문화硏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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