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충청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우촌이었다는 황무실성지

2021.01.10(일) 11:32:29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각보다 빠른 변화가 예상이 된다고 합니다. 코로나19에다 강추위에 야외활동이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새해의 해가 떠오르고 이제 10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의미있는 곳을 찾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1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2
 
약 235년 전인 1785년에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는 황무실성지라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시원시원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지만,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직후 교우촌이 만들어졌던 곳입니다. 한반도에 자리한 오래된 교우촌 중 한 곳이라고 합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3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4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5
 
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중에 숨어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는데,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메스트르(Maistre) 신부와 랑드르(Landre) 신부가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하여 묻혔다고 합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6
 
시간의 흐름을 뒤로 돌려보면 100년의 변화보다 어떻게 보면 지금 20년의 변화가 더 빨라지고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는 본인의 삶은 본인이 챙겨야 하며 삶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듯보입니다. 이곳에 조성되었던 황무실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로 붕괴되어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7
 
오래 전에는 사람 살던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도 바뀌었습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8
 
옛 황무실 교우촌 부지를 매입, 4m 높이 자연석으로 순교자 현양비를 세워 순교자들을 기리고 성지 복원을 본격화하면서 보존된 황무실성지는 대규모로 개발하기보다는 소박하게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신앙의 의미를 새기며 기도할 수 있는 성지로 가꾸었습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9
 
황무실성지가 교구 성지로 보존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충청남도에서가장오래된교우촌이었다는황무실성지 10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박해시기에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황무실(합덕읍 석우리 1013 일원)을 교구 성지로 선포하고, 성지순례지로서 보존한 것인데 프랑스 선교사로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성 위앵 민루카(1836~1866) 신부의 은거지였으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스승이었던 매스트르(1808∼1857) 신부와 랑드르(1828∼1863) 신부의 사목 근거지가 이곳이었다고 합니다.
 

초지일관님의 다른 기사 보기

[초지일관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