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이지함의 배움을 이었던 공주 서기 묘소

2020.09.29(화) 08:44:12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1

매번 이곳을 지나가면서 한 번쯤은 서기 선생 묘소와 신도비를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서기는 조선의 학자이며 자는 대가 호는 고청, 본관은 이천입니다. 조선 중종 18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2
 
인생의 이룸을 위해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 충청남도 공주에 잠을 자고 있는 서기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토정 이지함에게 배웠으며 대항과 중용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하기 위해 이소재와 이중호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3
 
그의 행적을 간단하게 알려주는 비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행적이나 남긴 학문에 대한 수준도 남다르다고 하지만 충청도의 다른 유학자들보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4
 
사람은 태어나는 것에 다른 의지는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는 것에는 의지가 따르지만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올 뿐입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5
 
이제 그의 묘소를 찾아서 올라가 보았습니다. 서기 묘소는 아래서부터 얼마 안 올라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서기의 장년기는 공부한 학문을 실천하기 위해 고향 홍주로 돌아가서 여씨향약을 시행하고자 했다 합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6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그의 묘소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7
 
일반적으로 나아가서 관직을 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주로 강학을 하면서 선유 선정의 정신을 모시는 사우를 세우고 서원을 세우는 등 강학의 정돈과 후진의 양성을 주로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8

묘소에 올라서서 보니 너무 외지고 접근성이 낮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리산에서 입산 수행을 하고 중악으로서 알려진 계룡산에서도 공부했던 그의 학풍은 계룡산 아래 공암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9
 
이지함의배움을이었던공주서기묘소 10

신도비가 남겨져 있는 서기 선생은 1910년 융희 경술년에는 정이품 자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 시호 문목공이라 하여 충현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야 할 길을 열어 경사학 방면에 침잠하여 먹기를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며 일찍이 외물로서 말년에 얻은 바가 많았던 사람으로 인생의 이룸을 보여주었던 사람입니다. 
 

초지일관님의 다른 기사 보기

[초지일관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