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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광의 꿈이 있었던 청양인의 삶을 엿보다

2019.06.22(토) 10:57:05 | 세상살이 (이메일주소:oculture@naver.com
               	oculture@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제의 고도는 한성, 웅진, 부여로 이어지며 삼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백제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한성은 조선의 수도로 오랜 시간 자리하면서 백제의 고도라기보다는 조선왕조의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는 충청남도의 공주와 부여의 고분군 등을 중심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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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청양은 어떨까요. 공주와 부여의 사이에 자리한 청양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백제 속의 청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청양은 적지 않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는 것을 청양백제문화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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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본 적이 있는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제3공구)에서 청동기에서 원삼국, 백제시대에 이르는 집터, 무덤 등의 유구와 유물이 다양하게 발굴되었는데 이곳에 그 현장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인 정산면 학암리에서 백제시대 토기 가마터와 청동기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등이 다량으로 발굴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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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비를 내면 이곳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서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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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의 백제는 비교적 세력이 강하던 시기였습니다. 신흥국가였던 신라는 기존 연맹국가였던 가야 등의 세력과 연계하기도 했었습니다. 청양 지역은 당시 사시랑현, 고량부리현, 열기현 등으로 관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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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고분 등에서 발견된 유물을 보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습니다. 청양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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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발전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청양은 청양만의 색채가 있는 경제권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군내에는 고속도로나 철도가 지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하지만 청양만의 색깔은 유지되고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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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에 독립운동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을 때 청양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은 일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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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1980년대의 청양의 생활상은 다른 지역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지역의 경제는 광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도 있으며 특히 금광이 많이 발달했다는 것이 충남의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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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있는 탄광에서 주로 채굴되던 광물은 석탄, 질석, 텅스텐 등이었습니다. 텅스텐 광산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자원적으로는 편재되어 있고, 우리나라(남북한 포함)도 텅스텐 광석의 세계 주요 생산국 중의 하나입니다. 상은 1911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처음 발견된 뒤, 1912년 강원도 금강산의 광산, 1913년 충청남도 청양군의 청양광산, 충청북도 중원군(현재의 충주시)의 대화(大華)광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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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의 광업은 남양면 구봉광산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되기 시작한 구봉광산은 1960년대에 연간 1,000㎏이 넘는 금을 생산해 청양군의 발전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금 생산량은 충청남도의 총 금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1991년 이후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내 금광은 전남 해남의 은산광산, 충북 음성의 무극광산, 경북 봉화의 금정광산 등 8개 정도가 남아 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인 은산광산이 연간 금 215㎏을 생산하며 은산광산에서 채굴되는 금의 양이 국내 생산량의 약 98%를 차지하고 있으니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청양의 지리적인 특징이나 금광으로 호황을 누렸던 그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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