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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조선 세종대왕이 묵었다는 서산객사

2019.06.18(화) 11:45:14 | 세상살이 (이메일주소:oculture@naver.com
               	oculture@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손님이 머무는 집이라는 의미의 객사는 조선시대에 가장 정성을 들여서 지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보통 중앙정부에서 관리가 내려가서 묵었던 지방의 객사들은 편하면서도 쾌적하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1

서산의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이 자리한 곳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른 곳과 의미가 다른 객사가 있습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2

정면 8칸, 측면 2칸의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의 서산 객사의 평면 구성은 중앙 3칸에 정청을 만들어 국왕의 궐패(闕牌)를 봉안하는 장소로 하고, 우측에는 1칸씩의 온돌방과 작은 대청을, 그리고 좌측으로는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대청을 만들어 관찰사나 사신 또는 귀빈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3

서산에는 태종대왕이 충녕대군을 데리고 와서 묵었던 서산 객사가 남아 있습니다. '떠 있는 사찰'이라는 이름의 부석사가 있는 도비산에 강무를 하기 위해 군사훈련차 들렸다가 묵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4

왕이 3일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객사는 고을의 수령이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삭망에 대소 관원들이 모여 배례를 올리던 곳입니다. 조정의 칙사가 오면 이곳에 유숙하면서 교지를 전하기도 하였고, 지방 고관이 부임하면 먼저 이곳에 들러 배례를 올립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5
 
서산객사의 지붕틀은 기둥 사이에 대들보와 종보을 걸고 있는 5량 가구로 건축양식은 전형적인 무출목(無出目) 초익공으로 공포를 짰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습니다.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 객사를 정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세종대왕이묵었다는서산객사 6
 
우리의 한옥은 처마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간에 처마는 조용히 우리 인간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는데, 내리쬐는 햇빛이 뜨거운 여름철에는 햇빛을 막아주고 추운 겨울날의 아침에는 방 안 깊숙이까지 햇볕이 들어오게 해 줍니다. 한옥은 여름과 겨울 해의 고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만들어진 처마의 미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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