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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남 역사 유적 탐방 영사암과 신풍리 마애불

가호유학의 중심 충남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

2019.05.09(목) 15:24:02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유학과 관련된 역사적인 유적이 많은 곳이 바로 충남이요, 그리고 논산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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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잎이 나지 않는 이 고목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지난 겨울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을 찾아가면서 우연히 지도에 나타난 신풍리 마애불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안내문이나 표지판을 찾지 못해 몇 번을 헤맨 끝에 이번에는 신풍리마애불 인근에 사시는 유학자 덕암 김용주 선생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찾아가게 되어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영사암(永思庵)이라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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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은 우리나라 양대 유학의 하나인 기호유학의 중심으로 소론의 영수였던 백의 정승 명재 윤증 선생을 비롯해 예학을 정리한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에 이르는 유학자들을 배출해 조선 유가의 한 축을 이루었던 곳입니다. 계룡도령이 처음으로 찾아가 본 신풍리 영사암과 마애불은 논산의 명문가인 광산 김씨와 연계된 장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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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휴정서원 쪽으로 들어가다 나타나는 삼거리 왼쪽의 급경사길을 오르면 영사암을 향하는 포장이 되다 만 길이 나오는데, 길 끝까지 가면 커다란 고목이 나타나고 그 맞은편에 그냥 양반가의 집 같은 단촐한 3칸짜리 영사암이 나타납니다.

영사암은 1989년 04월 20일 충남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탑정저수지 동북쪽의 고정산(高井山) 남쪽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길 75-42에 있는 조선시대 암자(庵子)로 태종 15년(1415년)에 출생하여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조 6년 병조참판으로 있을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예종 때에는 우의정 성종 때는 좌의정에 오르고 좌리공신 1등 광산부원군으로 봉해진 의정공(議政公) 김국광(金國光)과 공안공 (恭安公) 김겸광(金鎌光) 형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3년 간 무덤을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던 곳에 지은 암자를 겸한 수호사(守護舍)입니다. 이곳은 가사(家寺) 형태로 운영하며 승려를 두고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는데, 현재는 광산 김씨의 사우(祠宇)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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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영사암에는 건물에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내·외부 공간이 깔끔하게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지 굳게 잠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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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永恩寺)란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도 알려진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11-1번지는 현재의 영사암이 아닌 예전의 영사암이 있던 터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부적면의 고정산 남쪽 자락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로 면적 약 3,305.80㎡의 부지에 있는데 지금의 영사암이 있는 터에 처음 절이 세워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현재는 광산 김씨문중의 사우인 영사암(충남유형문화재 제129호)이 자리잡고 있으나 건물의 초석과 연화 대좌, 화강석 옥신석(屋身石)은 높이 0.6m, 너비 0.34m로 네 모퉁이에 귀기둥이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버팀기둥은 없고 복발(覆鉢, 노반 위에 주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과 함께 1매의 돌로 만들었으며, 찰주 구멍이 뚫려 있으나 훼손되어 절반만 남아 있는 노반석(露盤石,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등 탑의 잔해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절의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절터 뒤편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된 논산 신풍리 마애불(磨崖佛)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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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암 뒤편의 고정산 정상 부근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신풍리 마애불이 있는데 찾아가는 길은 영사암을 기준으로 왼쪽의 완만한 경사길로 오르거나, 아니면 오른쪽의 계단으로 향하다 보면 우측에 고정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샘(약수정)과 그리 크지 않은 좌불이 모셔져 있는데, 머릿돌에 따르면 불기 2533년 2월 5일 태고종 용주사(서울 봉천동)에서 당시 주지인 하순성과 신도들이 불사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기로 하면 30년 전인 1989년 샘 주변을 정비해 뚜껑을 만들어 덮고 좌불을 이운해 모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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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유형문화재 제54호 신풍리 마애불은 고정산 정상부 기슭에 돌출되어 있는 커다란 바위의 남쪽 평평한 부분에 부처님의 모습을 선으로 조각한 것으로 마애불 주변이 평지로 조성되어 있고 제기와 방화를 위한 공간은 촛불을 켤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등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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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신풍리 마애불은 고정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에 3.50m 크기로 선각되어 있으며 1976년 01월 0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영은사(永恩寺)란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 최근까지도 마애불의 앞쪽으로 사우(祠宇)가 있었다고 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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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얼굴은 살집 좋은 방형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어 친근감이 느껴지는데 머리에는 육계가 높이 솟아 있으며 미간에는 백호(白毫)의 흔적처럼 보이는 자국이 남아 있고, 가늘고 길게 뜬 눈은 반쯤 열려 있고, 넓적한 코는 안면 중앙에 자리해 있지만 입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으나 미소를 띤 듯 보입니다.

어깨와 거의 맞붙은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광배(光背)는 두신광(頭身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꼭대기의 치졸한 3구의 화불(化佛)로 두광을 대신하였습니다만, 신광 또한 가는 음각선으로 불꽃 무늬를 빼곡하게 새겼는데, 몸통과 마찬가지로 조각 기법이 둔중하고도 어색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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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은 앞가슴에서 모아 마주잡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수인(手印)은 마모되어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어깨가 유달리 좁고 일직선에 가까운 체형이며 어깨서부터 흘러내리는 옷은 일반적으로 미륵상이나 부처상을 조각하며 표현하는 모습과는 달리 전면에 각이 진 V자형의 가운을 걸친 듯한 모습이라 가사와는 많이 다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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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발 부위는 풍화되고 박리된 상태라 어떤 모습인지 추측할 방법이 없지만 고려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형식적인 면과 지방 양식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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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리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를 따라 아랫부분에 제단처럼 반석들을 둘러 놓았는데 오른쪽에도 제단이 보이고 바위에는 특이하게 열십자[十]의 무늬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자연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누가 의도하고 새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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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석의 재단 뒤로 보이는 바위는 마치 두 개의 바위가 겹쳐진 듯 보이며 정면에서 보면 커다란 고래같이도 보입니다.

논산의 많은 문화재 중에서 이번에 소개한 곳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앞으로도 논산 가볼 만한 곳을 열심히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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