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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백제의 역사와 군사기술을 만나는 군사박물관

2019.04.30(화) 10:49:41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왕족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군사기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예술과 문화를 확장시킬 수 있으며 종교와 사상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백제의 군사와 관련된 기억이라면 주로 황산벌전투의 계백 장군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계백 장군이 최후의 결전을 했던 황산벌의 논산에는 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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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국가를 유지했던 백제의 전모를 박물관 한 곳을 둘러보고 모두 알기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100년사에 관해서도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고 있어 제대로 알기란 불가능한데, 하물며 천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백제에 관해 다 알 수는 없어도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던 백제의 주요 사건은 배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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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군사활동을 연대기로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시대별로 주요 사건과 함께 당시 왕들의 기본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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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백제로 기억이 되기 시작한 시기는 3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이 시기는 자체 생산력의 발전과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해 주변 지역을 통합, 마한의 맹주 목지국까지 정복하고 한반도 중부를 석권한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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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부권에서 맹주 자리를 놓고 싸우던 백제가 충청남도를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공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부터이죠. 그리고 부여에서 백제 왕국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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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군사제도는 지방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백제의 지방제도는 주변 소국의 통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정비되었습니다. 공주에서 열기 시작한 웅진시대까지는 모든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하지는 못했고 주로 복속된 지역의 수장층을 통해 공납을 수취하는 등의 간접적인 지배방식을 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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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발전시킨 바탕이 철기문화였듯 백제 역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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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후기에는 수도의 행정 구역을 5부와 5항(巷)으로 나누어 구획하는 등 상당히 정비된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수도의 5부에는 달솔 관등을 지닌 자가 거느린 각 500명씩의 군사가 있었고, 지방의 5방에는 각각 700~1,20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했다고 합니다. 5방의 장관인 방령에는 달솔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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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군사들이 사용하던 칼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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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가게 되면 흔히 보는 무기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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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 무기를 어떻게 만들고 각종 생필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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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고조선의 멸망 이후 파상적으로 남하해온 북방 이주민들이 토착주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는데 이 세력과 합쳐진 것이 바로 백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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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토기들은 대부분 사찰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는 전래 초기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숭상·장려되었습니다. 심지어 599년에는 국왕의 명으로 생물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민간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며, 어로와 사냥도구들을 불태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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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이 제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듭니다. 백제 사회는 왕족과 귀족을 포함하는 지배 계층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일반민, 그 아래의 집단예민·노예 등을 포함한 피지배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계층 관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백제 역시 한반도에 자리했던 군사강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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