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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금산을 알 수 있는 역사박물관

2018.10.29(월) 08:36:17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곳에 가도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뗀석기 시대, 간석기 시대, 청도기, 철기, 그리고 최근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금산을 자세히 알기 위해 최근에 생긴 금산 역사문화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1

금산은 지형적으로 노령산맥을 이루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경치가 좋은 적벽강을 이루는 금강의 물길을 따라 비옥한 분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삼이 잘 재배되기도 합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2

사냥과 식량자원의 채집을 위해 이동생활을 했던 구석기시대는 보통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전기는 주먹도끼가 대표적이고 후기는 좀돌날 몽돌이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3

금산에 있는 창평리 유적에서는 철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금산은 마한 54개 소국중 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4

옛날에는 농기구조차 하나의 권력처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금산 수당리에서는 세 자루의 살포가 발견되었는데 살포는 실제 기능보다 농사를 장악한 기득권의 권력 상징처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백제는 지역의 농업 통제권을 인정해주는 의미로 지역 지배층에게 하사한 위세품이었습니다. 

금산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은 한성에서 공주로 수도를 옮긴 후부 터였다고 합니다. 금강은 흘러내려가 부여에서 백마강이라고도 부르는데 금강 상류지역의 금산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백제의 동쪽 경계를 막는 요충지로 백령성과 장대리 고분군, 수당리 유적, 창평리 유적을 통해 지방 통치체제로 적극 활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5

금산은 마한, 가야, 신라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고 있음을 수당리 유적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6

이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금산의 자기 가마터로 신동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조선 전기 15세기 전반에 조성되었고 신동리 백제 가마터는 조선 후기 17~18세기에 순백자가 제작되었습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7

덕흥대원군의 애기태비가 있기도 한 금산은 조선시대에만 진안군과 금산군이 공존할 정도로 주요 지역이었으며 이치 전투에서 승전하면서 임진왜란 승리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의 교리가 최초로 크게 부딪친 곳으로 천주교 박해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금산을알수있는역사박물관 8

보통 박물관은 군 단위부터 조성을 하는 데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박물관이 짜임새 있게 공간 구성이 되어 있더군요. 금산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진악산, 대둔산, 서대산이 있고 체험으로는 금산 산림문화타운, 금산 생태과학체험장과 무형문화를 전수하는 곳으로 물떼기 농요 전수관과 농바우 끄시기 전수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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