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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예산의 대표정자 '일산이수정'을 만나다

2018.09.08(토) 14:56:55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목조를 기본으로 했는데 하부에는 돌로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걸고 서까래를 얹어 경사진 지붕을 올리고 지붕 위에 기와를 얹었습니다. 건물은 기단과 몸체, 지붕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목조건물의 기본입니다. 정자 또한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1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2

오래간만에 다시 예산의 일산이수정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올라가는 길목은 좁으니 차를 가지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3

일산 이수정은 한 집안의 교육을 위한 건물로 세워졌지만, 1920년 경에는 국문 강습소가 개설되었고, 1923년에는 현 신양초등학교의 전신(前身)인 신양 공립 보통학교 개교 시에는 창립 교사(校舍)로 활용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일산이수정은 근처의 도로에서도 한참 안쪽으로 들어와야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보는 경관이 그럴듯하게 펼쳐집니다. 정자는 예산의 달천(達川)과 청양군 운곡면에서 흐르는 죽천천이 만나 예당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의 작은 동산 위에 세워진 건물 주위의 지형지세를 보고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라고 지었는데요. 즉 하나의 작은 산과 두 개의 천이 합쳐진 곳에 세워진 정자라는 뜻입니다.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4

일산이수정에 있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난 다음 해 이곳에 초대를 받아 며칠 머물면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 궁궐 등의 건물에 달리는 어필 현판은 각별히 취급되기도 했지만 양반 가문의 현판도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당대의 명필에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다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궁궐의 중요 전각은 이 보다 한 단계 격식을 높여 검은 바탕에 금으로 글씨를 쓰고 옻칠을 한 다음 금박을 입혔습니다.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검정 바탕에 흰 글씨, 가장 낮은 건물이나 출입문에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씁니다.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5

일산이수정의 대청에 잠시 앉아서 바깥풍경을 감상해봅니다. 멀리 펼쳐지는 논과 밭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주변을 돌아보면 파노라마 같이 확 펼쳐지는 것이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일산이수정은 1849년(헌종 15) 경 이철수(李喆洙, 1824∼1896)에 의해 건립된 전주 이씨의 서당으로 건립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서계양리에 거주하고 있는 전주 이씨 집안만이 자녀교육을 위하여 건물을 세우고 훈장을 초빙하여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정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예산의대표정자일산이수정을만나다 6

가정을 바로하는 것은 바로 가르치는 일이라고 합니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집안의 교육을 위해 일산이수정을 세웠던 가문은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했을 겁니다. 

이글은 https://brunch.co.kr/@hitchwill/1601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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