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여름방학 문화탐방 논산 김집선생사당

2018.07.01(일) 21:20:06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곧 다가오는 여름방학.
학부모들의 고민 해소를 위해 계룡도령이 여름방학문화탐방에 아주 좋은 곳을 소개합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1

여러분 이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기와로 지어진 조선시대 양반가의 주택인데...  외삼문에 홍살문이 보이고 자동차도 많고 뭔가 특별해 보이죠?

이곳은 충남문화재자료 제294호로 지정된 김집선생사당[金集先生祠堂]인데 사당을 제외한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다른 설명이 붙지 못한 곳이랍니다.
ㅠ.ㅠ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2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라다 보이는 곳이 바로 광산김씨 문경공파 사계 김장생 선생부터 이어지는 김집 선생의 종가입니다.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조선시대에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한국의 대표 가문 중 하나인데 특히 사계 김장생의 후손은 크게 번창하여 대제학을 7명이나 배출한 가문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운몽[九雲夢]의 저자 김만중도 그 후손 중 한 사람이랍니다.

현재는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96에 있는 은농재가 사계 고택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실제는 사계고택이라고 할 수 없고, 사계의 계비 순천 김씨에게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김규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처소로 종가는 김집 사당이 있는 이곳이라고 합니다.

사실대로 밝혀서 문화재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야하는데 정확한 것은 문중에서 잘 알고 있겠죠?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3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4

원래는 종가 앞의 뜰에 연못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꾸어 버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적어도 2016년 까지는 있었다고 하며 위의 위 사진에 보면 황토색의 흔적이 있는데 작년이나 올해 초 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합니다.
^^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5

2010년 정도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별채[?]의 모습입니다.

별채의 뒤로 보이는 특이한 모습의 나무는 무슨 나무였을까요???
곧게 솟은 나무는 능소화 덩굴이 완전히 점령해 버렸는데 7월 초가 능소화가 꽃을 피우면 장관이겠죠?
^^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6

본채와 새로 지어진 별채 사이로 김집 선생 사당이 보입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7

김집 선생 사당은 정문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을 올리고, 측면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바람을 막기 위하여 박공벽에 붙인 널빤지]을 시설하였는데 좀 짧은 느낌이 들고 사당의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벽면에는 위패를 모실 수 있는 단을 높게  설치하여 종손가 4대를 포함 5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해마다 5월 12일에는 김집의, 12월 8일에는 부인의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8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나, 사장학[詞章學: 시와 문장을 짓는 데 힘쓰는 학문]보다는 경전 연구와 수양에 전념하다가 1610년[광해군 2] 헌릉 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은퇴하였으며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부여 현감과 임피 현령[臨陂縣令]을 지냈고, 그 뒤 전라도사·선공감첨정 등에 거듭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사직하고는 학업에 전념하여 정홍명[鄭弘溟]과 태극설[太極說]을 논하였고, 윤선거[尹宣擧] 등과는 상례에 대해 논하며 발전시켜왔으며 또한 아버지 김장생이 편찬한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을 교정하고 편집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였습니다.

그 뒤 동부승지·우부승지·공조참판·예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으나,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사임하였기에 태학의 유생들이 벼슬에 오래 머물도록 해달라는 소를 올리는 등 사람들에게 그의 덕망은 흠모의 대상이 되었었다고 합니다.

1649년[효종 즉위년] 대임[大任]을 맡겨달라는 김상헌[金尙憲]의 특청을 효종이 받아들여 이조판서에 임명되면서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기도 하였고, 1653년[효종 4] 좌참찬을 거쳐 이듬 해 판중추 부사에 임명되었으나 효종의 각별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초야에 묻혀 경전 연구와 수양에 힘썼다고 합니다.

이이[李珥]의 학문과 송익필의 예학[禮學], 그리고 아버지 김장생[金長生]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그 학문을 송시열에게 전해주어 기호학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저서로는 '신독재문집[愼獨齋文集]'이 있고, 편저로는'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이 있고 연산 돈암서원[遯巖書院], 임피 봉암서원[鳳巖書院], 옥천 창주서원[滄州書院],  황해도 봉산 문정서원[文井書院], 부여 부산서원[浮山書院], 광주 월봉서원[月峯書院] 등에 제향 되었다고 합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9  
일반인들의 사당은 가묘[家廟]라고도 하고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 하는데 고례[古禮]에서는 사당을 종묘 또는 예모[禮廟]라고 하였고 주자의 가례[家禮]에서 사당이라고 칭하던 것이 통용되어 왕실의 종묘와 구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당 문화는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고려 말부터 보편화되고 조선 중기 이후에 와 더욱 철저하게 실행되어 사대부 양반에게 일반화되었고 서민이나 가난한 사람들도 대청 모퉁이에 모셨다고 합니다.

사당 주변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사당의 경건함을 더욱 높여주는 듯합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10

김집 선생의 사당이 있는 광산김씨 중종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홍살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은 궁전, 관아, 사당, 정려 등 신성한 장소에 설치하여 훌륭한 스승이 계시니 행동을 삼가라는 표식입니다.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11 
그런데 사계고택인데 왜 김집 선생의 사당만 문화재이고 나머지는 아닐까요?
외삼문 솟을대문 종도리에 적혀있는 글귀에는 단기 4323년 8월 21일 상량이라고 되어 있으니 1990년에 중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옛 모습을 기본으로 복원하는 형식이었겠지만 문화재가 되기에는 문제가 있는 듯 보이죠? 

여름방학문화탐방논산김집선생사당 12 
그런데 이때 굉음을 울리고 지나가는 기차, 종손은 이제 자장가처럼 나는지조차 모르고 산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문화재의 보존에 문제가 될 진동 발생은 물론 조용히 지내야 할 예학의 거두 신독재 김집 선생의 종가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기찻길을 좀 염려되더군요.

아무튼 이번에 계룡도령이 미처 물어 보지 못한 부분, 별채의 건립시기와 연못을 메꾼 시기는 여름방학을 맞아 찾는 여러분이 알아 와 댓글로 남겨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계룡도령의 빅 픽처였습니다.
ㅎㅎㅎ

 




김집 선생 사당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267-1
 

  

 

계룡도령춘월님의 다른 기사 보기

[계룡도령춘월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hdcom
  • 트위터 : http://twitter.com/aspire2k
  • 미투 : http://me2day.net/mhdc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