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국립공원의 상봉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 가재울 마을에는 멋진 소나무들에 둘러싸여있는 이삼 장군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삼 장군의 묘소 아래에는 1996년에 논산 향토유적 제26호로 지정된 백일현 영당/가곡 영당[白日軒影堂/嘉谷影堂]이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논산 향토유적 제27호 이삼 장군 재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백일현 영당에서 쇄서포의, 포쇄가 있다 하여 계룡도령이 다녀왔습니다.
포쇄는 일반적으로 음력 7월 7일, 여름 장마 동안 장롱에 넣어둔 겨울 의류와 한 곳에 쌓아 둔 책에 찬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으로 이때쯤이면 장마도 끝나기 때문에, 옷과 책을 말려 두면 별 탈 없이 한 해를 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일반 가정과 달리 영당에서는 기나긴 겨울을 나면서 영정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바람을 쐬게 하고 보관 중인 책을 햇볕에 말리는데 책이나 옷 등을 볕에 쪼이고 바람에 쐬는 일, 즉 바람을 쐰다 하여 거풍[擧風]이라고도 하고 책에 대해서는 포서[曝書]라고 한답니다.
지난 5월 5일 지역 유림과 함평 이씨 종중 유림이 백일헌 영당에 모여 포쇄를 한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간 것인데 이날 같이 자리한 50여 명의 지역 유림들은 백일헌 이삼 장군에 대한 긍지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이삼[李森, 1677~1735]장군의 자는 원백[遠伯], 호는 백일헌[白日軒]이며 본관은 함평인데 지금의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명제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나 영조 때 노론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풀려나 훈련대장으로 승진하였고, 이후 어영대장이 된 사람으로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2등 공신에 책봉되었고, 영조 5년[1729년]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이삼의 사후 영조가 “충관백일지의[忠貫白日之義]이니 백일헌[白日軒]”이라 하여 손수 글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삼은 지리의 이용과 기계의 제조는 물론 여러 무술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관서절요(關西節要)]를 저술했답니다.
백일헌 이삼장군의 가곡영당 포쇄를 통해 지역 유림들이 하나가 되고 조상들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표하는 시간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포쇄가 끝이 났습니다.
이날 이삼 장군의 종손은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하고 유림들을 대접하며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었는데 포쇄는 모두가 하나되는 좋은 관습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