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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32) 패전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6.12.30(금) 23:46:0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천명32패전 1


천명32패전 2
 
“물러서지 마라! 물러나면 다 죽는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있다. 진력을 다하라!”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의군의 무지막지하고도 예리한 칼날에는 상대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칼날에는 사정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쓸어 넘겼던 것이다.

우측이 무너지자 중군은 물론 좌측까지 위험했다. 아니, 처음부터 좌측도 상대가 되질 않았다. 요셉의 용맹함에 이규동은 일찌감치 꼬리를 내뺐고 순진한 백성들만 희생양이 되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신음소리가 횡행했다. 아비규환,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를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대려국왕 최처인은 연거푸 탄식을 쏟아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전투는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순동이 견디지 못하고 최처인을 찾았다. 그러나 최처인은 순동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망연자실하게 용봉산 아래 들녘을 둘러볼 뿐이었다. 우측은 무너졌고 좌측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뒤쪽으로는 달아나는 자들도 보였다. 최처인은 넋이 나간 듯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저를 따르시지요.”
순동이 보다 못해 최처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최처인은 순동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어디든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살길입니다.”
대려국의 꿈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먼지구름 속에 대려국 군사들이 곳곳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손에는 칼도 죽창도 쇠스랑도 없었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이들은 이제 군사가 아닌 평범한 백성들에 불과했다. 대려국의 군사도, 조선의 역적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살고자 하는 욕망에 부리나케 들녘을 내달리는 흰 옷 입은 가련한 백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논으로, 밭으로 흩어진 채 달아나는 대려국 군사들을 금마 의군과 홍주목 관군이 뒤쫓아 살육했다. 핏물이 흥건했다. 용봉산 아래로 난데없는 혈천(血川)이 생겨났다.

“역적의 괴수를 잡아라!”
홍주목사 권자헌은 최처인과 이규동을 비롯한 대려국 두령들을 잡으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놀란 최처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순동을 따라 몸을 돌렸다. 휑하니 비워진 전장 터는 피바람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 많던 대려국의 군사들이 썰물이 빠지듯 저 멀리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역적의 괴수가 여기 있었구나!.” 외치는 소리에 최처인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칼을 들었다. 그러나 요셉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단칼에 허무하게도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피꽃이 붉게 피었다. 놀란 순동도 검을 들었으나 역시 상대가 아니었다. 은빛 칼날이 허공을 한 번 긋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붉은 선이 허공에 피어나며 순동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용봉산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티고개의 신갑주뿐이었다. 해미병영의 군사를 막기 위해 한티고개로 간 보부상 상단 세력이었다.

고갯마루에 선 신갑주는 해미 쪽을 내려다보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나 고개 아래에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것은 덕산현 쪽이었다. 수많은 군사들이 기치창검을 앞세운 채 한티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은?”
신갑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은 지금까지 대려국이 관군에 패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충격은 더욱 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봐야했다.

“전열을 정비하라! 적이 뒤쪽에서 올라온다.”
대려국 남방 상단 세력은 부랴부랴 진영을 바꿨다. 덕산현 쪽으로 몸을 돌렸던 것이다. 좁은 고개를 차단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홍주목 관군은 의군을 앞세운 채 거침없이 한티고개를 올라왔다.

“돌을 준비하라. 투석전을 펼친다.”
활이 없으니 돌로라도 다가오는 적을 지연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라도 버티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돌은 많았다. 위에서 던지면 아래에 있는 적을 상대하기도 수월할 것이다.
의군과 관군이 사정거리에 다다르자 신갑주가 먼저 외쳐 물었다.

“어디에서 온 관군인가?”
모르고 묻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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