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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금평리 김애마을 문병순 할머니의 대추밤콩 이야기

홍동 '씨앗도서관' 씨앗마실<1>

2016.10.24(월) 08:38:54 | 마실이 (이메일주소:hsmasiri@gmail.com
               	hsmasiri@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씨앗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2014년, 홍성씨앗도서관 준비모임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대물림된 씨앗을 수집하며 그 씨앗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기록하는 여행-씨앗마실-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씨앗은 단순히 농사의 시작이자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짓던 농부님들의 삶과 오랜 대물림의 역사가 켜켜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 여행은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홍성씨앗도서관 활동의 가장 큰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씨앗마실을 통해 모인 씨앗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들을 이야기책으로 엮고자 했지만 아직 풀어놓지 못하던 차에, 마실통신 지면을 빌려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 중 하나를 먼저 소개합니다.

 “짜게짜게자개가지구잘영글었어”
금평리 김애마을 문병순 할머니의 대추밤콩 이야기

2014년 시월,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여전히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던 날. 씨앗마실 장소인 금평리 김애마을로 가던 도중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 원래 가기로 했던 집에 못 가게 되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자며 가을소풍 나온 듯 가볍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노란빛으로 물든 논길을 따라 가는데, 저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한가득 짐이 실려 있는 걸 보니 밭에 다녀오셨나 보다. “안녕하세요!” “잉, 누구여?” “사실 저희가 여기 할머니들이 가지고 계신 씨앗 구경하러 왔는데, 여차저차해서… 혹시 어르신네 씨앗 가지고 계신 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우리 집에 많이 없는디… 그려, 따라와.”

우연한 만남에 신이 난 우리는 혹시라도 길을 놓칠까봐 오토바이를 따라 재빠르게 걸었다. 할머니는 햇볕에 말리고 있던 크고 붉은 앵두팥과 촘촘하게 무늬가 그려진 잿빛의 재팥을 보여주셨다.

“우리 집은 이것뿐이야. 우리보다 저기 아랫집에 가면 씨앗이 더 많이 있을 거여.”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콕 집으며 알려주신 방향으로 내려가니 반짝반짝 빛나는 논 바로 앞에 푸른 집이 있었다. 아랫집 할머니는 투박한 손으로 아주 정성스레 콩을 고르고 계셨다. 크고 작은 콩알이 서로 부딪혀서 차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씨앗 구경하러 왔다는 우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할머니는 밝은 얼굴로 들어오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대문 없이 활짝 열린 집 마당에는 며칠간 수확한 햇곡식들이 쭉 널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가을빛깔을 닮은 갈색 콩.

“와! 이 콩은 뭐에요? 진짜 예뻐요.”


금평리김애마을문병순할머니의대추밤콩이야기 1

금평리김애마을문병순할머니의대추밤콩이야기 2

문병순 할머니(이하 ‘문’ 대추밤콩) 이거 어제 내가 뚜드려서 하나 먹어보지도 않은 거여.
씨앗마실 팀 (이하‘씨앗’) 진짜요? 대추밤콩요? 이런 콩은 처음 봐요!
너무 예쁘다. 보석 같아, 보석. 진주알 같아. 깨끗하게 골라서 이렇게 예쁘구나.
문 : 이놈 하구 꺼먹콩 하구 섞어져 가지구 밤새 골렀어.
씨앗 :  잠깐… 찬찬히 여쭤볼게요.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문 : 문병순.
씨앗 : 연세는요?
문 : 칠십사. 이거 먹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주네.
씨앗 : 아주 조금만 주셔도 돼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콩은 어디서 나셨어요?
문 : 우리 거. 옛날부터 하던 거.
씨앗 : 옛날에 시집오니까 여기서 원래 하고 계셨어요?
문 : 잉, 그랬어.
씨앗 : 시어머니가?
문 : 아니, 그냥 내가 인저 어디서 얻어다 한 거여. 시어머니는 그때 이런 거 안 하시더라구.
씨앗 : 얻으셨어요?
문 : 잉, 얻어다 한 건디 여태 허여. 몇 십 년째.
씨앗 : 그게 몇 년 전인 거 같으세요?
문 : 나 시집온 지 52년.
씨앗 : 동네에서 얻으셨어요?
문 : 장에서 팔었지. 그렇게 해서 요것이 쬐금씩 해여. 많이 씨 안 밑지구팔거나 다 먹지 않고 씨앗을 남겨 둔다는 말. 이게 일러서 추석 때 송편 속 해먹어, 꺾어서 까서.
씨앗 : 그럼 그 때 풋으로 드시겠네요?
문 : 잉, 풋으로. 그냥 까가지고 소금에 살짝 절여서 설탕 넣구 이렇게 해서 송편 속 넣구서 맹글어. 그렇게 하느라구 씨 안 밑지느라구씨앗 남겨두려고 쬐끔씩 허여. 많이 안 혀.
씨앗 : 그럼 언제 씨앗을 뿌리세요?
문 : 이거? 봄이.
씨앗 : 고추 심을 때요?
문 : 그때 심어서 놔두면 팔월 대목에 누럿누럿혀. 그런데 우리가 인자서 뚜드렸지. 걷어다 놨다.
씨앗 : 팔월 대목이면 누럿누럿해져요?
문 : 잉, 그때 누럿누럿허면 그때 까서 송편하구 밥 해먹구 그러고서 요거 남었어.
씨앗 : 송편하고 밥하고 지금 수확해서…?
문 : 지금 수확하간? 접때 했지.
씨앗 : 9월 즈음에요?
문 : 10월 초인가 9월 말인가 걷었어, 어쨌거나.
씨앗 : 얘는 병 같은 거는 잘 안 걸려요?
문 : 왜 안 걸려, 걸리지. 약 허야 하는데 약 허나? 안 하니께, 여기는.
씨앗 : 벌레도 먹어요?
문 : 어제 엄청 벌라지 나왔어. 약 안 허서. 약 허야 하는디 그냥 여는 대루 먹으니께.


금평리김애마을문병순할머니의대추밤콩이야기 3

“누구여?”
 
할머니를 둘러싸고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서 크게 인사했다.

문 : 풀무핵교에서 나왔댜. 학생들이래유.
할아버지 (이하 ‘할’) 아, 학생이구먼. 근데 학생이 다 아닌 것 같어.
문 : 하하하. 학생도 있고 어른도 있고.
씨앗 : 하하하… 송편이나 밥에 넣어 드시는 것 말고 또 다르게 드시는 거 있으세요?
문 : 장에 갖구 가고 튀어서 먹어두 되구.
씨앗 : 아, 튀겨서. 튀밥 하는데 가서요?
문 : 잉, 그거 튀겨서두 먹구… 뭐 콩 암치기나 먹는겨, 다.
씨앗 : 떡은 안 해드시고요?
문 : 왜 안 혀? 떡두 허게 되믄 무리떡백설기 허지. 담궜다.
씨앗 : 무리떡이요? 이렇게 갈아서…
문 : 아니, 불려서. 무리떡 질라믄 그냥 통으로 넣어야지.
씨앗 : 이 콩은 땅이 건조해도 잘 자라요?
문 : 너무 저기 건조하믄 되간? 조금 걸어야지거름기가 있어야지. 너무 맨땅에 심어두 안 되어. 조금 밑거름 있어야지.
씨앗 : 키는 얼마나 커요?
문 : 잘되믄 크고 안 되믄 쪼그맣구.
씨앗 : 꼬투리는 길어요? 아니면 그냥 콩 같아요?
문 : 콩 같지.
씨앗 : 메주콩이랑 비슷해요?
문 : 잉, 콩 농사 해봤잖어?
씨앗 : 네, 그래도 저건 안 해봐서…
문 : 뭘 안 해봐. 콩이 똑같지. 콩 여는 건 다 똑같어.
할 : 나도 이 콩은 첨 보는디.
문 : 첨 보는 콩이여? 어이구, 어디 갔다 오셨간?
할 : 이건 첨 봐.
문 : 아니, 이거 추석 때 꺾어서 밥 해먹고 많이 안 혀. 두 고랑 심었는디.
할 : 이거 콩 이쁘네.
문 : 콩 이쁘지, 아주까리마냥. 짜게짜게 자개가지구 콩알이 잘고 작은데도 잘 영글었어, 올해.
씨앗 : 저희가 나중에요. 잘 키워서 불려서 나누고 그럴 건데 책 빌려주듯이 씨앗을 빌려주고 또 받을 거예요. 그래서 씨앗도서관이라는 걸 할 건데, 그때 만들면 꼭 초대할게요.
문 : 그려, 오라구 허여. 오라구 허면 갈 거여.
씨앗 : 차 가지고 모시러 올게요.
문 : 그려, 우덜 그냥 걸어선 못가. 허리 아퍼서.
할 : 배불릉께 걸어선 또 못 간다네.
문 : 걸어서 못가지. 어치게 거까지 걸어가. 거기 풀무 대학교까지 어치게 걸어가, 갓골을.
할 : 갓골? 갓골이 참 한 오백리 되지.
씨앗 : 갓골도 아시네요!
문 : 갓골을 모르나. 우리 손주들 다 갓골유치원 대녔잖여.
할 : 거기 한가했었는디 지금 큰 동네 됐어.

* 농부님들의 정겨운 사투리를 잘 담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려서 정리했습니다.

 
금평리김애마을문병순할머니의대추밤콩이야기 4

문병순 할머니는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시며 깨끗하게 골라둔 재팥, 붉은팥, 찰옥수수, 녹두 씨앗도 한 움큼씩 더 나누어주셨다. 가을걷이 하시느라 바쁘신 와중에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작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려는 마음에 물었던 사소하고 서투른 질문들에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해주셨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하면 만담하듯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재밌게 말을 건네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예정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 시간. 스물다섯, 시집 오셨을 때부터 오십여 년 간 이어져온 귀한 씨앗과 그 사연들을 한 아름 품에 안고 돌아가는 길, 왠지 마음이 벅차올랐다. 우리가 이 씨앗을 이렇게 쉽게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했다.

* 씨앗마실은 ‘씨앗을 만나러 동네로 마실 나간다’는 뜻

인터뷰어. 오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교사, 홍성씨앗도서관 대표
글ㆍ정리/사진. 문수영 홍성씨앗도서관 일꾼

* 이 글은 마을활력소가 발행하는 '마실통신'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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