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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5살 아들과 깍두기 만들기

2016.02.15(월) 11:37:22 | 홍순영 (이메일주소:ssoonyoung@hanmail.net
               	ssoonyoung@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텃밭에서 자연재배로 키운 무를 가을에 수확했다. 수확한 양이 나누어 먹고도 남아 텃밭 한쪽에 구덩이를 파서 저장해 두었다. 겨울 내내 잘 먹고 이제 마지막 남은 무를 모두 꺼내기로 했다. 저장된 무가 왠지 썩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저장 실력이 아직은 믿을만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무를 꺼내어보니 습기에 노출이 되어 약간 무른 무도 보이고 표면과 가까이 놓여있던 무는 살짝 투명한 모습을 하고 얼어있다. 많은 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반은 깍두기로 만들고 반은 시원한 상온에 놓고 두고두고 먹기로 한다.
 
깍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리 해야 하는 작업들이 있다. 일단 깍두기를 버무릴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번 김장때 남겨두었던 양념을 냉동실에 넣어두었는데 그것을 이용하기로 한다. 양념 만들기의 수고로움을 좀 덜 수 있겠다. 다음은 무를 절여야 하는데 땅속에 묻어두었던 무여서 흙도 많이 묻어있고 손질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듯하다.
 
마당에 나와 수돗가 앞에서 무를 본격적으로 손질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5살 호승이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나두 할래.”하며 다가온다. 차가운 물 때문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호승이도 장갑이 필요하단다.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호승이 손에 끼웠더니 신이 난 표정에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 본격적으로 무를 닦기 시작한다. 꼼꼼하게 흙을 털기 위해 이리 닦고 저리 닦고 심혈을 기울인다.
 
무를 닦았으니 이제 겉껍질을 살짝 깎아야 한다. 바로 수확한 무는 겉 표면이 깨끗해서 따로 깎지 않고 먹는 것이 몸에도 좋고 편리한데 저장을 해두니 표면이 거뭇거뭇하다. 감자 칼을 갖고 와서 조심스레 깎기 시작한다. 호승이는 옆에서 “내 꺼!”하며 자신이 평소에 쓰던 감자칼을 갖다 달랜다. 호승이는 감자칼을 갖고 평소에도 감자, 호박, 가지, 고구마의 껍질을 깎아왔다. 함께 깎기 위해 내 것과 호승이 감자 칼을 구별해서 사용하는데 평소에 쓰던 자기 감자칼을 갖다달라고 한다.
 
그동안의 숙련된 솜씨는 빛을 바랜다. 한손에 쥐어지는 무를 골라 안정감 있게 잡고서 중간에서 끝으로 깎아 껍질을 벗긴다. 무의 맨살이 하얗게 드러내야 그제야 끝났다고 바구니에 담는다.
 
이제는 무를 적당한 크기로 썰 차례이다. 무는 칼을 이용해야 해서 내가 모두 하려고 했는데 호승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평소에 쓰던 칼을 부엌에서 찾아서 나온다. 호승이는 야채를 썰 때 스텐으로 만들어진 양식 칼을 준다. 호박이나 가지처럼 약간 무른 야채는 썰기 힘들지 않지만 감자나 무와 같이 견고한 야채들은 양식칼로 자르기는 벅차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무를 자른다. 호승이가 자른 무는 굵은 소금으로 간이 밸 수 있도록 버무려 놓는다.
 
이제 한참을 소금간이 베도록 기다려야 하니 호승이는 그제야 무 손질에서 관심을 떼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간다.
몇 시간이 지나 간이 모두 베었을 때 무를 맑은 물에 씻어 물기를 말리고 양념을 버무린다. 양념버무리기는 호승이를 부르지 않고 혼자 해치웠다. 호승이도 부르고 싶었지만 과거에 함께 버무리다 집안이 온통 고춧가루 양념이 묻어 힘들었던 경험에 그냥 조용히 해치웠다.
 
호승이가 묻는다. “엄마 이게 뭐야?” 김치 통에 담은 빠알간 깍두기를 보고 묻는다.
“호승이가 무를 깨끗이 씻고 잘라서 만든 깍두기야~”하고 설명하니 “나 깍두기 좋아하는데~”하며 대답한다. 호승이는 정말 깍두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손길이 깃든 깍두기여서 더 애착이 가는지 매 끼니마다 깍두기를 내놓아야 한다.
 
음식을 함께 준비할 때마다 호승이는 늘 관심을 보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한다. 그 집중력은 웬만한 놀이보다 월등히 높다. 그리고 음식을 바라보는 자세가 자연스레 달라짐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먹지 않는 야채를 직접 키우고 수확해서 음식을 만들면 자연스레 입속으로 들어간다.
 
음식을 잘 먹기 위해서 함께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큰 욕심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요리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되도록 이면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도록 해야겠다. 더불어 엄마의 수고로움도 좀 알아채려나...하는 기대감도 가져본다.
 
 
 


5살아들과깍두기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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