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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55)배신

청효 표윤명의 연재소설

2015.08.27(목) 12:36:2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미소55배신 1

미소55배신 2

“장군, 단풍이 너무 짙습니다.”
사타상여의 말에 흑치상지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말일세. 장부로 태어나 큰일을 한 번 도모하려 했으나 이제 그 꿈도 다 깨어진 것 같네. 저 붉게 물든 단풍처럼 화려하게 지고 말겠지. 이 임존성과 함께 말일세.”
흑치상지의 탄식에 사타상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폐하의 안위와 태자를 비롯한 수많은 백제인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사타상여의 말에 흑치상지는 흠칫했다.

“이 별부장은 오직 장군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장군의 꿈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 사타상여는 죽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사타상여의 생각지 못한 말에 흑치상지는 난감해했다. 그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표정에서 사타상여의 뜻을 읽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군께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시든 이 사타상여는 함께 하겠습니다. 며칠간 장군께서 잠 못 이루시며 힘겨워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처음 편지를 대하고 분노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군의 뜻이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흑치상지는 뒷짐을 진 채 임존성아래를 굽어보았다. 흐드러진 단풍이 바람에 잘도 흩날려대고 있었다. 울긋불긋 지는 단풍이 가녀린 춤을 추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죄 없는 이 임존성 안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가엾은 저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 목에 칼을 꽂아야만 합니까.”
“목소리를 낮춰라. 누가 들을까 두렵구나.”
흑치상지의 말에 사타상여는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흑치상지에게 말을 이었다.

“장군, 장군께서 결정을 내리시면 제가 지수신을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수신만 설득한다면 모든 것은 끝입니다. 장군께서는 새로운 백제의 기둥이 되셔야 합니다.”
흑치상지의 마음이 흔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만큼이나 세차게 흔들려댔다. 그러나 아직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사타상여는 지수신 몰래 성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부장들에게 일러 조용히 준비시켰던 것이다. 풍달군 출신 군사들과 임존성에서 흑치상지와 사타상여를 특별히 따르는 군사들을 가려 뽑아 성을 나갈 채비를 갖췄던 것이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사타상여는 다시 흑치상지를 찾았다.

“장군,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제 지수신만 남았습니다.”
“그가 동의하겠는가?”
“그건 상관없습니다. 동의한다면 다행이지만 반대한다 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준비한대로 그냥 떠나면 됩니다.”
“만약 저항하고 막는다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땐 제거해야겠지요.”
사타상여의 말에 흑치상지는 한 숨을 짙게 내뱉었다. 고개까지 흔들어댔다. 찬바람이 군막을 뚫고 들어왔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는 비까지 쏟아질 기세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타상여는 군례를 올리고 지수신이 지키고 있는 남문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그때 흑치상지가 손을 들어 사타상여를 불렀다.

“잠깐, 기다려라.”
흑치상지의 부름에 사타상여는 다시 몸을 돌렸다. 흑치상지는 손을 비벼대며 안절부절 못했다. 갈등이 흑치상지로 하여금 어쩌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 간의 정도 있고 또한 만에 하나 군사들끼리 충돌이 있다면 둘 다 죽는 것이다. 차라리 몰래 떠나느니만 못 할 것 같다. 성에 나가 설득하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니 그리 하는 것이 좋겠다.”
흑치상지의 말에 사타상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 같습니다. 허면 언제 나가실는지요?”
흑치상지는 바람에 펄럭이는 군막 밖으로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에서인지 그의 입술에서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오늘 밤이 달도 뜨지 않는 그믐이니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흑치상지는 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동안 백제를 되살리기 위해 애쓴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풍달군장으로서 군사들을 이끌고 임존성으로 오던 일, 복신, 도침과 함께 의기투합하던 일, 지수신과는 엊그제만 해도 함께 피 흘리며 당 군을 물리쳤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은 배신자가 되어 떠날 것이다.

역사에 흑치상지라는 넉자 이름은 영원한 배신자로서 낙인이 찍히고 말 것이다. 흑치상지의 한 숨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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