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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금강은 말하겠지요

낮술, 다 이유가 있습니다

2015.02.10(화) 07:14:29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나흘간 이어진 근무, 아울러 이틀 연속 야근 뒤의 달콤한 휴식이었지요. 그러나 귀가한 아침에 서너 시간을 자고 일어난 뒤 저는 또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건 바로 알바를 나가야 하는 때문이었습니다.
 
경비원은 사실상 소문난 박봉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면 몰라도 저처럼 아내가 건강이 안 좋은 고삭부리여서 외벌이를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당연히 경제난에 쪼들릴 수밖에 없죠. 이의 타파 차원에서 지인의 사무실에 나가 알바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알바인 까닭에, 또한 한 달에 고작 열흘도 못 나가는 터여서 알바의 수입은 시쳇말로 ‘담뱃값이나 버는’ 수준입니다만. 아무튼 지인의 사무실에 나가 알바를 하면서 집을 나설 때 아내와 약속한 “이따 오후 다섯 시까지 00 식당으로 와.”라는 걸 떠올리며 한 시간 쯤 전에 그 식당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거기 자주 가는 사람인데요, 다섯 시까지 갈 테니 돌솥밥 2인분 준비 부탁합니다.” 미리 해두었다가 손님에게 주는 식당의 평상 밥과 달리 돌솥밥은 보통 20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별미’입니다. 가격은 보통의 밥보다 1천 원이 비싸죠.
 
하지만 기왕지사 모처럼 부부간의 외식이거늘 아무리 박봉의 경비원이라 할지언정 어찌 그걸 비싸다 하겠습니까! 알바 사무실에서 일어난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40분 앞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곤 시간에 맞추어 그 식당에 들어서니 아내는 잠시 전에 집에서 왔다며 앉아있더군요.
 
식당의 서빙 아줌마는 제가 아내 앞에 앉자 준비했던 돌솥밥을 냉큼 내왔습니다. 우린 거기에 부수적으로 딸려 나온 쌈밥의 각종 채소와 삼겹살, 그리고 된장찌개와 꽃게무침 등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주 한 병은 기본으로 같이 마셨고요,
 
그러니까 그건 바로 ‘낮술’이었던 것이죠. 낮술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의아스런 눈길을 보낼 수도 있을까 싶네요. 그래서 말인데 ‘낮’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의 동안인 까닭에 우리부부가 만나서 다소 이른 저녁과 술을 먹은 어제 저녁은 사실 해가 지기 전이었으므로 낮술에 해당되는 셈입니다.
 
우리 속담에 ‘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게 있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내와 그처럼 기분 좋은 낮술을 마시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니까 말입니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어 전에 마시다 남은 4홉들이 소주를 마저 마신 뒤 곧장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부족한 잠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저의 낮술을 마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게 잠이 든 시간은 어제 저녁 8시 반 즈음... 그리고 오늘은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떴습니다. 그러니까 약 아홉 시간이나 푹 잔 셈이네요.
 
이처럼의 숙면이 저로선 다시금 건강을 되찾고 아울러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 요인까지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과음 수면이 건강에 안 좋다고 말립니다. 그렇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멀쩡한 정신으로 저녁 8시 반부터 잠자리에 든다는 건 우스개로 “라스베가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박봉에 시달리고, 그래서 별도의 알바를 하지 않으면 아내의 약값 조달조차 여의치 않은 중늙은이 경비원이란 게 저의 초상이자 현주소입니다. 그렇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는 반드시 있는 것이며 또한 솔직히 말해서 경비원이란 현재의 직업 또한 수년 뒤 정년에 걸리면 더 하려 해도 사실은 불가능한 직업에 다름 아닙니다.
 
때문에 두 아이가 모두 결혼하고 나면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 요량입니다. 예컨대 낮엔 일하고 밤엔 자는 그런 평범하면서도 사실은 행복한 삶의 직업으로요. 이 같이 밤의 충분한 수면이 사실은 행복의 공식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4년여의 경비원 생활을 해 오면서 터득한 것입니다.
 
즉 야근을 하느라 잠을 못 자면서 맞는 새벽이 되어 제 몸이 마치 열기 위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의 상황이 될 적마다 이런 자괴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죠.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인데 과연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직업이 없는 것일까?!’
 
어쨌든 저 또한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수확이란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결코 씨를 뿌리지 않듯 말이죠. 저의 희망은 두 아이의 빠른 결혼, 그로 말미암은 두 아이에 버금가는 참하고 튼실한 며느리와 사위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저 금강은 제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지? 하지만 앞으론 결코 흘러 보낸 자네 청춘을 눈물 속에서 떠오르지 말게나. 대신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모질게 살아왔던 지난날을 되레 오늘날 아이들의 성공 디딤돌이라고 생각 자체를 치환하게나. 왜냐고? 자네는 자타공인 ‘자식농사’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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