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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주 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 백제문화의 우수성

2014.12.26(금) 00:37:54 | 쟈스민 (이메일주소:mee0102@naver.com
               	mee010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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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다른 계절에 가본다는 것은 계절성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그때 그 순간 설명을 들었더라도 놓치기도 하고 금새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게 되면 한 번만 가서 볼 수 없었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거나 그때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될 때가 많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러니까 여행에 있어서는 진리인 셈이다. 배롱나무가 곱게 피어있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던 한 여름날 이후 눈 쌓인 겨울날 송산리고분(무열왕릉)을 우연히 다시 찾게 되면서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공주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백제문화의우수성 2▲ 송산리 6호분(벽돌무덤)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을 지나 언덕을 조금 오르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송산리 6호분이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옛 지명인 공주읍 송산리 송산의 남쪽 경사면(현재,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에 있던웅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원래는 17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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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산리 5호분(굴식돌방무덤)
송산리 6호분을 지나 구석 지점에 송산리 5호분이 나타난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으로 구분되는데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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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열왕릉(벽돌무덤)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무덤으로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이다. 송산리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한 총 108종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공주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백제문화의우수성 5▲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
실제의 고분군은 보존상의 문제로 내부를 관람할 수 없지만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실제와 같은 규모의 모형을 통해 무덤의 내부와 무열왕릉의 축조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열왕릉의 축조과정을 조금 더 눈여겨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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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열왕릉 축조과정 1. 벽돌제작
8척 장신에 인자한 성품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사마왕이었기에 일반적인 돌무덤이 아닌 조금 특별하게 벽돌로 만들었다. 고운 흙을 골라 직사각형이나 사다리꼴 형태로 모두 28종의 벽돌을 만들었으며 벽돌에는 사마왕이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꽃무늬를 넣었다.

공주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백제문화의우수성 7▲ 무열왕릉 축조과정 2. 벽돌굽기
원래 벽돌은 중국의 황하나 양자강유역처럼 황토 흙이 많은 곳에서나 유행하던 것으로 백제에서는 제작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다. 화강암이 많던 백제에서는 돌로 무덤을 만드는 것이 더 익숙했기에 중국 양나라에서 유행하던 벽돌을 모방하거나 또는 그 기술을 받아들여 왕릉에 쓰일 벽돌을 만들었다.

공주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백제문화의우수성 8▲ 무열왕릉 축조과정 3. 부장품 제작
백제인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단순히 이승과의 작별이 아닌 저승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며 "무덤은 죽은 자가 누워있는 공간이 아니라 저승에서 태어날 시간을 기다리는 대기실"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무덤은 살아있을 때의 왕궁처럼 등불을 켜 무덤 안을 환하게 밝혔으며 무덤 안의 공기를 환기시킨다는 의미로 창문을 만들었다. 부활할 시간을 기다리는 왕의 시신은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만든 목관에 안치하여 보호하였으며 왕비가 애지중지하던 팔찌는 물론, 중국에서 새로 보내온 도자기와 같은 갖가지 장식품과 생활도구를 함께 묻어 무덤 안에 부장된 유물이 약 4천여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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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열왕릉 축조과정 4. 무덤터 닦기
동쪽으로는 청룡맥, 서쪽으로는 백호맥이 좌우에서 감싸주는 송산의 남쪽경사면 명당자리에 무령왕을 모셨다. 무덤이 자리할 곳을 지하로 깊이 파고, 그 안에 무덤 칸과 널길을 만들었다. 장마철에 큰비가 내리면 무덤 안에 빗물이 찰 염려가 있어 바닥면에는 배구수도 만들었다.

공주송산리고분군무열왕릉과백제문화의우수성 10▲ 무열왕릉 축조과정 5. 무덤 축조
미리 제작한 연꽃무늬 벽돌을 이용하여 바닥면과 벽면, 천장을 축조하였다. 먼저 벽돌을삿자리모양으로 깔아 바닥을 완성한 다음, 벽은 4장의 벽돌을 옆으로 뉘어쌓은 다음 1장은 세워쌓는 4평1수의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벽면 중간 높이에는 캄캄한 지하공간에서 왕을 지켜주기 위해 중국에서 가져온 등잔불을 올려놓은 자리도 마련하였다. 터널형 천장은 안쪽에 나무틀을 대고 바깥쪽 면이 넓고 안쪽 면이 좁은 사달꼴 모양의 벽돌을 잇대어 쌓은 후, 나무틀만 걷어내어 터널형 천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왕릉은 붉은색 연꽃무늬가 가득찬 무령왕이 부활하기를 바라던 그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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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무열왕릉의 무덤의 내부와 축조과정을 살펴보면서 백제인이 죽음과 무덤을 대하는 정신과 4,600여 점의 유물들, 특히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금속공예품은 당시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무령왕이라는 확실한 연대를 알수 있는 출토유물인 묘지석은 한국고대사와 동아시아의 역사를 올바르게 표기할수 있는 유용한 지표가 되었다.

송산리 고분군(무열왕릉)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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