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내에서 39번 국도와 623번 지방도로를 가다보면 배방면 중리마을에 들어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오면 맹씨행단의 주차장이 좌측에 있다. 잘 보존된 고택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맹사성행단 역시 설화산을 진산으로 앞으로 배방산이 안산으로 나지막하게 감싸고 있는 아늑한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입구부터 비교적 잘 보존된 돌담과 은행나무가 많아 마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청백리 맹씨행단 유물전시관
언제나 열려있는 맹씨행단 대문이다. 문을 들어서면 낡은 관리사에 거주하고 계시는 21대 종손 맹건식, 성낙희부부를 뵐 수 있다.
몇 계단만 올라왔는데 안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마당에 은행잎이 노랗게 채워 설렁함을 덜어주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는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숲 속 같은 느낌이었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늘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은행나무이다. 발밑으로 물컹한 은행알이 밟히면서 독특한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래도 가감하게 은행나무 아래로 들어가 보게 된다.
맹사성이 직접 심은 쌍행수는 600여년의 세월만큼 해마다 은행을 다섯가마정도 떨어진다고 한다. 맹사성은 이곳에서 축대와 단을 쌓은 다음 후학들에게 강학을 하였다 하여 '맹씨행단'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은행나무 아래서 보니 고택의 단출한 모습이 더욱 느껴진다. 본래 고려 말의 최영(1316-1388)장군이 살던 집인데 맹사성이 손녀사위가 되면서 물려받은 것이다.
명재상의 청빈한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변형되어 H 자를 이루고 있다. 대청 위의 높은 용마루가 맞배지붕이며 옛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기둥에서 솟을 합장이 있는 마루대공을 올린 수법으로 민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이다. 또한 사면에 모두 넉살 문짝과 앞면에 네짝 중 한칸만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짝이며 양쪽으로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부엌채와 헛간채, 사랑채는 사라진 형태이다.
바로 옆에 있는 세덕사는 고려말 두문동 72현이 맹유, 맹희도, 맹사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당격인데 마루가 있어 마치 사랑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맹씨행단 돌담을 너무 언덕으로 올라오면 소담스런 고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소나무는 울창한 멋은 없지만 돌담옆에 서 있으면 멀리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돌담 끝에 자그마한 쪽문이 보인다.
쪽문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200미터 쯤 가면 구괴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맹씨행단은 한옥이 주는 공간의 향연, 창호틀이 만드는 풍경화, 한옥에 숨은 과학적인 설계 등 화려한 한옥의 멋을 느낄 수 는 없지만 그래도 텅 빈 공간 속에서 청빈하게 살았던 선비의 삶을 생각하고 느끼며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 속에는 꽉 찬 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11월이면 슬며시 떠오르는 곳, 쌍행수가 그리워 다시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