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향교는 충남 기념물 제 119호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며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활을 위하여 창건되었다. 여러번의 중수 끝에 지금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가 남아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연산향교의 소장 전적은 판본 4종 17책, 사본 10종 15책이 있으며 선생안, 청금록, 유안, 연산강학계안 등 지방향토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맘때쯤 배롱나무가 곱게 피어 있을 것 같아 찾아가게 된 연산향교는 연산재래시장에서 북쪽으로 이정표를 보고 철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 하면 관동리 마을로 들어선다. 양쪽으로 논이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오면 마을 입구에 마을의 수호신처럼 고목이 한 그루 묵묵하게 서 있어 눈길이 간다.
마을 안쪽으로 좁은 길을 200여미터 올라오면 멀리 홍살문이 보이고 그 옆으로 넓은 주차장이 있다.
향교에 오면 자연스럽게 하마비가 어디에 있을까 찾게 된다. 연산향교의 하마비는 주차장 아래 좌측 풀 숲에 가려져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주차장 바로 위에는 최근에 생긴 듯 공덕비 2기가 세워져 있으며 주변에 배롱나무가 곱게 피어 있다.
▲공덕비
향교를 자주 찾는 편인데 활성화되고 문이 개방된 향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찾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연산향교는 관리동이 있어 사람이 기거하는 듯 한데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에도 인기척은 없다.
관리동 옆쪽으로 유생들의 쉼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문묘정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자리잡고 있다. 향교 문은 닫혀 있지만 옆쪽 문을 살짝 열어보니 열려서 다행히 향교를 둘러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명륜당 옆모습과 그 앞에 세월을 가늠할 수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향교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배롱나무 아래서 이리저리 고운 모습을 담아본다.
▲명륜당
향교에 가면 은행나무와 배롱나무가 꼭 심어져 있는데 배롱나무는 껍질이 얇아 마치 껍질이 없는 것처럼 속이 다 비쳐 학문하는 선비들이 나무처럼 겉과 속이 같은 마음으로 다른 마음을 품지 말기를 바라며 많이 심었다고 한다. 나무의 매끈한 줄기처럼 생각과 행동이 깨끗하기를 바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있다.보통 향교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으로 이어진다. 또한 배치는 평지이면 배향공간을 후면에 두고 강학공간을 앞에 두는 '전묘후학'으로 배치를 하는데 연산향교처럼 경사진 곳은 강학공간을 앞에 둔 '전후후묘' 형태의 배치공간을 가지고 있다.
명륜당은 유학을 가르치던 강학의 장소이며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대성전
▲내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