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백장군묘
왕릉정도는 아니지만 잘 보존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계백이 결사대를 이끌고 먼저 나아가 3영을 설치하고 신라군을 기다렸으므로 황산벌은 이들의 후방으로 연산면 신양리(新良里) 일대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계백장군의 기세가 느껴지는 묘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계백은 김유신과 함께 역대 충신으로 기려졌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계백의 황산벌 전투는 백제와 신라의 호국 충정의 격전장이었으며 계백으로서는 1당 100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이나 싸워 이겼습니다.
▲ 계백장군묘.
저곳에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계백이 누워있을겁니다.
황산벌 대결전장의 하나였던 벌곡면 한삼천리 일대에는 백제군과 신라군이 흘렸던 피와 땀이 냇물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후에 사람들은 한삼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7월 9일 계백 : 결사대 5천 네 번 회전에 모두 이겼으나 5번째 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