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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과천에서 만난 충남인물'추사 김정희'

2014.03.05(수) 17:17:54 | 잎싹 (이메일주소:kji206@naver.com
               	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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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의 체취가 가장 많이 배어 있는 곳은 충남 예산으로 추사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곳으로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박물관 그리고 묘소가 있다. 충남의 인물인 추사 김정희는 제주유배지에도 기념관이 있는데 말년에 4년간 보낸 과천에도 추사 박물관이 있다. 추사박물관은 추사를 종합적으로 연구, 전시, 체험할 수 있도록 추사의 생애실, 추사의 학예, 후지츠카 기증실, 기획전시실과 체험실, 강좌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야외에는 과지초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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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박물관 들어가는 입구에는 재미로 보는 윷점이라는 설명과 함께 윷을 던지게 마련되어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던져보았더니 개.도,개가 나왔는데 뜻풀이는 '모두 다 어려운 처지지만 본인에게는 좋은 일이 생길 운세이다'라고 나왔다. 왠지 올해도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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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생애전시실에서는 월서위궁~연경행, 한양시절, 제주 및 북청 유배시절, 과천시절, 추사생애의 종합으로 나뉘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다. 어린시절의 수학, 연행을 통한 새로운 문물 체험, 북한산진흥왕순수비의 확정 등과 한양관직생활, 유배생활, 말년 과천생활로 추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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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김정희(1786-1856)는 아버지 노경(魯敬)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의 장남으로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뒷산 오석산의 원맥인 팔봉산의 초목과 우물물이 모두 말라 있었는데 그가 태어나자 샘물이 솟고 초목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추사는 타고난 천품과 치열한 학예연찬으로 서예사에서 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 19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현재 추사영정은 예산 추사고택 사당에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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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 서첩으로 허련이 추사가 쓴 '석파의 난권에 쓰다'의 한 구절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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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추사가 유배되었던 제주에서 살던 집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곳은 추사체의 산실로 '세한도'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다. 아쉬웠던 건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도 모형으로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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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크게 그려진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힘겨운 유배생활을 할때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에서 두번이나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가 뒤늦게 시듬을 안다'는 발문으로 제자의 변치 않는 마음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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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학예 코너에는 19세기 학문의 새경황, 추사의 학예교류, 추사학예의 내용, 추사체의 변화로 주제가 구분되어 있다.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는 과정, 청나라 학자들과의 활발한 학예 교류, 조선 금석학 연구와 여러 계층과의 교우, 고전 글씨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추사체를 이룩해 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과천시절에 완성됐다고 추정되는 작품의 글은 예서대련'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은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요 고희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 가족과 우리 음식이라는 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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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은 서울 봉은사에 써 준 현판으로 추사 말년의 대표작이자 최후의 작품으로 추사가 세상과 이별하기 3일전에 쓴 것이다. 글자 옆에는 '71세 된 과천 노인이 아픈 가운데 쓰다' 라고 쓰여 있어 쓸쓸했던 추사의 말년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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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작품이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데 예산에는 화암사 병풍바위에 새긴 '시경' 예산 서계양리에 있는 정자의 현판 '일산이수정''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시경루' 가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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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은 자연스럽게 지하 후지츠카기증실로 이어졌다.
일본의 유명한 경학자이자 추사연구자였던 후지츠카, 그이 아들이 추사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하여 사진으로 남은 추사글씨 등 추사연구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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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글씨는 여러 번 변화했다. 초년에는 종래의 조선글씨로 기름지고 획에 골기가 적다는 평을 받았다. 그 뒤 당나라 글씨를 따랐고 예서를 매우 즐겼는데 처음에는 삐침과 파임이 유려한 동한의 팔분(八分)을 배우다가 뒤에는 서한은 고예(古隸)를 추구하였으며 노년에는 더욱 고졸(古拙)하고 금석기 넘치는 서풍을 구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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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인장을 새기며 전각에 조예가 깊었고 여러 인장을 사용하였다. 성명인을 비롯하여 추사, 완당, 노과 등의 호인, 자신의 서적, 서화에 찍은 수장인, 감식을 나타낸 심정인, 유명한 시문 구절이나 명언을 새긴 명구인, 바람이나 길조를 뜻하는 길상인 등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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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70년 동안 벼류 열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하였다.
그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갈고 닦고 노력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현재 붓은 7자루가 남아 있는데 작은 붓 1자루, 중간 붓 2자루, 큰붓 4자루로 크기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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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건물 벽에 그려진 '세한도'와 더불어 추사의 대표작 '불이선란도'가 그려져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난초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라기보다는 서예적인 비중이 더 많은 독특한 묵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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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지초당

박물관 우측에는 추사가 제주 및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후 서거하기까지 4년간 말년을 보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과지초당이 있다. 과지초당은 1824년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마련한 별서로 정원과 숲이 빼어나고 아름다운 연못을 갖춘 곳이다.


예산 추사기념관보다 자료가 많음에 살짝 질투가 나긴 했지만 예산에서 보았던 추사의 묵향을 다른 지방에서 관람하니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을 생각하게 한다. 조만간 햇볕 좋은 날 추사고택으로 달려갈 것 같다.


추사박물관 (02-2150-3650) 경기도 과천시 추사로 78(주암동)
-관람시간 : 9시~18시
-휴관일 : 매주월요일 / 1월 1일 / 설날 / 추석
-관람료 : 어른 2,000원 / 중고생 1,000원 / 초등학생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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